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파사의 수행, 현정의 수행

장백산-1 2016. 5. 20. 02:20

파사의 수행, 현정의 수행

법상| 2016.05.19.  http://cafe.daum.net/truenature/S27F/527 


대승불교에서의 破邪顯正(파사현정), 바르지 못한 것은 타파해버리고 바른 것은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파사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과 현정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먼저 파사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삿된 것을 타파하는 방법으로, 시비, 분별, 망상, 알음알이(분별의식), 

분별심, 무명, 집착, 욕망, 삼독심 등의 삿된 생각 마음 의식을 깨어버리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경전이나 

불교의 방편이 주로 이 파사라는 방편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삼독심의 불길을 훅 불어 끄는 것을 열반이라 하여,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가지 마음

즉, 삼독심을 삿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해탈이라는 말은 우리의 순수한 생각 마음 의식을 얽어매고 

있는 삼독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해탈로 번역되는 빠알리어 ‘위목카’, ‘위뭇띠’는 해탈, 해방, 자유 등의 의미인데, 무엇으로부터의 벗어

남일까요? 경전에서는 탐욕과 분노 무명으로부터의 해탈이라고 말하고 구체적으로는 유신견, 회의적 의심, 

계율에 대한 집착, 감각적 욕망, 성냄, 아만, 들뜸, 무지 등 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파사의 수행은 중생들로 하여금 쉽게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게 합니다. 크게 

얽매여 있는 집착과 애욕, 성냄과 어리석음, 아상과 분별심 등을 하나 하나 깨뜨릴 수 있도록 이끄는 것

이지요.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음으로 인해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그 괴로움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에 갇혀 

있는 사람은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방식인 것이지요. 사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이나, 

불교의 교리는 바로 우리가 잘 ‘파사’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방편의 가르침입니다.


이처럼 불교에는 파사하는 다양한 방편이 있습니다. 기도법, 수행, 명상, 참선, 염불, 독경, 사경, 다라니, 

참회, 발원 등 다양한  수행 방법들이 모두 시비, 분별, 망상, 집착과 애욕, 무명, 아상 등의 삿된 생각 마음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방법입니다.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파사하는 다양한 수행 방법들이 있어왔지만, 후대에 들어 곧장 正, 眞理를 드러

내어 보여주는 ‘현정’의 수행 방법이 생겨났는데, 이 현정의 수행 방법이 바로 선(禪)입니다.


파사는 삿된 생각 마음 의식들을 하나 하나 없애주는 친절한 방법을 써서 깨달음, 진리에 이르도록 하고 

있는데 反해, 현정하는 禪 수행 방법에서는 깨달은 조사가 당신의 깨달은 當處, 見處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어서 진리,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깨닫지 못한 중생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죠. 진리, 당처, 견처를 곧장 보여줘도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이 자꾸만 ‘이것이다’ 하고 알려주니까, 제자는 '이것이' 뭔지를 당췌 모르겠고, 당황스럽고, 

답답하고, 온통 꽉 막혀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고 옴짝달삭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祖師禪

이고 看話禪인데요, 이 禪에서는 顯正으로 眞理, 깨달음, 당처, 견처, 본래면목을 곧장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 大道常在目前(대도상재목전)이라 하여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道는 영원히 언제나 눈앞에 드러나 

있다고 말합니다. 입처, 당처라고도 하여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렇게 道, 진리, 깨달음, 입처, 

당처, 견처, 본래면목이 이렇게 환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하지요. 이 道를 곧장 손가락으로 바로 가리킨다고 

하여 直指人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가리킬까요? ‘뜰 앞의 잣나무다’,  ‘마른 똥막대기다’ , ‘할’,  ‘방’,  ‘무’ 하는 등의 말 아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통해 道, 眞理를 드러내 가리켜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진리, 당처,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현정의 방편으로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지요.


파사의 방법은 점수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현정의 방법은 돈오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또한 파사는 ‘敎’라면, 현정은 ‘禪’이지요. 불교 교리와 경전을 통해 차근차근 선근공덕을 심고 반야

의 씨앗을 심다 보면, 어느 순간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선의 방편인 직지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몰록 깨닫

는 돈오의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