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분별하는 마음 생각인 삶(生)과 죽음(死), 천당과 지옥
유후(留後) 이단원(李端愿)이 달관(達觀) 선사에게 물었다. “사람이 죽으면 意識은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달관 선사가 말했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이유후가 대답하였다. “삶이라면 제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달관 선사가 말했다. “삶(生)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유후가 머뭇거리자 달관 선사가 그의 가슴을
찌르면서 말했다. “다만 지금 여기에 있을 뿐이거늘 是非 分別하는 生覺으로 무엇을 헤아리는가?”
이유후가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그저 길 가는 것만 탐할 줄 알았지 길을 잘못 든 줄 깨닫지 못
했습니다.” 달관 선사가 말했다. “인생, 삶 百年이 한낱 꿈일 뿐이다.”
이유후가 다시 물었다. “지옥은 정말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달관 선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님(諸佛)께서는 없음 가운데서 있음을 말씀하셨으니 그대 눈에 虛空꽃이 보이는 것이요,
그대는 있음 가운데 나아가 없음을 찾고 있으니 손으로 물 속에 비친 달을 건지려고 하는 것이다.
우습다! 눈앞에 보이는 지옥을 피하지 않고서 마음 바깥에 보이는 천당에 태어나고자 하는구나.
즐거움과 두려움이 마음에 달려 있고, 선과 악이 對相 境界를 이루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태위(太尉)여, 다만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저절로 의혹이 없을 것이다.”
이유후가 나아가 말했다. “마음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달관 선사가 대답했다. “선과 악이라는 분별을 모두 생각하지 말라.”
이유후가 다시 물었다. “분별을 생각하지 않은 후에 마음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달관 선사가 말했다. “태위여, 집으로 돌아가게!”
- 임간록
달관 선사가 말한 이런 道理를 깨닫지 못하면 어떤 것이 眞實이고 어떤 것이 虛想인지, 어떤 것이
생각이 아닌 것이고 어떤 것이 생각인 것인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위에 든 예화 속에
등장하는 이유후와 같이 사람이 죽으면 운운 하는 質問이 그저 虛想, 단지 虛妄한 生覺에 불과할
뿐이라는 事實을 도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虛妄한 生覺이 아닌 眞實을 맛본 적이 없기 때
문에 지금 이 순간 自己가 일으키는 眞實이 아닌 虛妄한 生覺, 그 허망한 觀念, 삶과 죽음이라는
그 虛妄한 分別心 槪念을 事實이라고 굳게 執着하해서 믿게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意識은 어디로 돌아가느냐는 質問에 달관 선사는 ‘삶도 아직 모르거늘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는 孔子의 말로 대답합니다. 아는 것이 病이고, 모르는 것이 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말과 槪念일 뿐인 삶(生)과 죽음(死)을 배워 알기 以前에는 허망한 말
과 槪念일 뿐인 삶도 몰랐고 죽음도 몰랐습니다. 삶도 모르고 죽음도 몰랐기 때문에 삶도 따로 없
었고 죽음도 따로 없었습니다. ‘삶도 아직 모르거늘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란 말의 진실은 삶도 따
로 없고 죽음도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말의 槪念的 觀念的인 뜻만 따라가서 自身은 삶이 무엇인지을 안다고 말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자신의 눈앞을 떠나서, 別個로 따로 존재하는 삶이라는
客觀的인 고정된 실체가 있는 듯 여기는 生覺 즉, 錯覺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삶이라고 하는
物件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느냐고 되물으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自己 自身이 바로
삶 自體인데 삶 自體인 自己 自身이 어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올
수가 있는 것입니까? 달관 선사는 묻는 이의 가슴을 찔러 보임으로써 삶과 죽음의 出處 즉, 自己
自身, 무시무종으로 영원히 파동하는 우주근원에너지정보場,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 바로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現存을 直接 가리켜 보여준 것입니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自己 自身을
직접 곧장 가리켜 보여주었으나 이유후는 전혀 알아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지옥이 정말 있느냐 운운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삶과 죽음, 천당과 지옥, 부처와 중생,
너와 나, 선과 악 등등 모든 分別 差別의 모든 현상으로 현시되어 나타나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의
出處가 바로 가슴을 찌르는 그 자리, 찌를 때마다 감각이 출몰하는 그 텅~빈 곳에 있는 줄 어찌
꿈속에선들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우리 人間이 알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단지 虛妄한 分別心 즉, 텅~빈 마음 위에 그려진 고정된
실체가 없는 虛妄한 生覺인 虛想일 뿐이라는 事實을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
떻게 해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분석 해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 의식 생각 망상 망념
번뇌 잡념 卽, 일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 지식이 무엇인지를 깨달
을 수 있을까요? 달관 선사는 善과 惡, 부처와 중생, 지혜와 무지, 너와 나, 생과 사, 시작과 끝 등의
모든 分別을 生覺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生覺도 없고 저런 生覺도 없지만, 아는 것도 아니고 모
르는 것도 아니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텅~빈 무엇이 바로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 순수한 마음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분석 해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 의식 생각 망상 번뇌 망념 즉, 알
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 지식에 가려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이 순수한 마음은 새롭게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유후는 칠통 같은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헤아리기를 좋아하
고 즐기는 마음 의식 生覺 망상 망념 번뇌 잡념 卽,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 지식에 푹 빠져서 도무지 거기에서 빠져나올 줄을 모릅니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 의식 生覺 망상 망념 번뇌 잡념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어디
로 돌아간다니요? 이 물음도 바로 허망한 시비 분별하는 生覺 마음 의식 망념 망상 번뇌 잡념 즉,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 지식인 줄을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 것
일까요?
生覺이 아닌 眞實이 있기에 生覺이 出沒하고, 眞實이 있기에 虛想, 虛妄한 生覺이 生滅하는 겁니다.
虛妄한 生覺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그 자리, 虛想이 등장하고 소멸하는 그 자리가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 의식 생각 망상 망념 번뇌 잡념 즉,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 지식이 아닌 眞實의 자리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보고 있는 여기 이 자리가 진실한 자리입니다.
쯧쯧쯧, 벌써 또 시비 분별하는 생각을 굴리시는군요!
- 몽지님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과 모양과 실존 (0) | 2016.08.20 |
---|---|
통제 Control (0) | 2016.08.20 |
시비 분별하는 마음 생각은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 같다. (0) | 2016.08.19 |
반야의 슬기로 본 세계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자(者) (0) | 2016.08.17 |
色卽是空 空卽是色 / 색즉시공 공즉시색 (0) | 2016.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