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이 없어졌을 뿐

장백산-1 2016. 8. 22. 17:26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이 없어졌을 뿐


숭신(崇信)은 도오(道悟) 화상에게 출가하여 몇 해 동안 시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숭신이 물었다.

“제가 이곳에 온 이래 마음의 요체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도오 화상이 말했다.

“그대가 이곳에 온 이래로 일찍이 내가 그대에게 마음의 요체를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숭신이 다시 물었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도오 화상이 말했다. “그대가 차를 

가져 오면 내가 그대를 위해 차를 받아 마셨고, 그대가 밥을 가져 오면 내가 그대를 위해 밥을 먹었

으며, 그대가 절을 하면 나 또한 머리를 숙였다. 어느 곳 어느 것이 마음의 요체를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냐?”


숭신이 그 뜻을 알지 못해 是非 分別하는 思量分別心, 허망한 生覺을 굴리면서 가만히 있자 도오 

화상이 말했다. “마음을 보려면 곧장 바로 봐야지, 머뭇거리며 분별하고 생각하면 어긋난다.”

숭신은 그 말을 듣고 시비 분별하는 사량분별심, 허망한 生覺의 감옥이 툭~트여 깨닫고 말했다.

“마치 세상을 방황하던 자식이 집에 돌아온 것만 같고, 가난한 사람이 보물를 얻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도오 화상에게 절을 올리고 다시 물었다. “어떻게 보림(保任)해야 합니까?”

도오 화상이 말했다. “성품에 맡겨 自由롭게 노닐며 因緣을 따라서 걸림 없이 자유롭게 지내라.

범부의 是非 分別하는 思量分別心, 분별의식, 알음알이(識), 허망한 생각 마음 지견 견해 이해 지식

이 다했을 뿐 어디 달리 성인의 깨달음에 대한 특별한 견해가 별도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 경덕전등록-



인간이 마음이라고 말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 ‘마음’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다음

과 같이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② 사람이 타인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③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④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⑤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⑥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⑦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마음이라는 말, 單語의 이와 같은 뜻풀이를 보면 인간은 어느 정도 ‘마음’은 이런 거구나 하고 마음이 

무엇이지 理解한다고 여기고 生覺합니다. 그러나 모든 말이나 單語가 그러하듯이 ‘마음’이란 말 단어 

역시 本來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에 대해 自意的인 社會的 約束으로 規定한 象徵이나 記號에 불과

고, 그 記號나 상징에 대한 意味, 뜻풀이 역시 또한  또 다른 記號나 상징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단 ‘마음’뿐만 아니라 모든 單語에 대한 어떠한 定義도 그 단어의 實體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부정

확하고 불확실한 그림, 이미지, 개념, 관념, 상징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모든 언어, 추상적인 의미 기호 상징은 事實은 無意味한 허망한 幻想이나, 眞實을 

가리키기 위한 方便, 하나의 里程標일 뿐이라는 眞實을 절실하고 사무치게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人間의 是非 分別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生覺 妄想 妄念 雜念 煩惱 想念 意識 마음 卽,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식 이해 견해 지견을 외부로 표현하는 도구 수단인 言語는 결코 진실 자체

가 아니라는 事實을 銘心해야만 합니다. 말과 生覺을 통해서 진실을 알 수는 절대로 , 결코 없습니다.

더 이상 말과 生覺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순간, 우리 인간은 거대한 허무, 너무나 두려운 

무지와 마주하게 됩니다. 앎과 모름이라는 二元性의 한계선에 다다르게 됩니다.


禪에 발 딛으려면 모름지기 祖師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마음 길이 다해 시비

분별하는 마음 의식 생각 망상 번뇌 잡념 상념이 끊어져야만 합니다. 이제까지 내가 依持하고 있던 모

든 生覺, 의식, 마음, 망상, 번뇌, 잡념, 知見, 見解, 理解, 理致, 道理, 知識, 알음알이(識), 分別識, 分別

心, 分別意識이 완전히 박살이 나서 알 수 없는 虛空 속으로 완전하게 사라져버려야 합니다.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감옥이나,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깊은 함정 속에 빠진 사람처럼 어떻게든지 살아나겠

다고 발버둥 쳐야 합니다. 스스로도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갑갑한 마음에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줄줄 

쏟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本來부터 항상 이미 완전하게 눈앞에 있었지만 그동안 是非

分別하고 思量分別하는 固定된 實體가 없는 虛妄한 말과 生覺 망상 망념 번뇌 잡념 상념 의식 마음,

지견, 견해, 이해, 지식,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에 가려져서 스스로 보지 못했던 眞實

이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보이는 사물, 들리는 소리, 느껴지는 

감각 등에 因緣 해서 本來 아무 부족함 없이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나의 본래마음, 自己 自身,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을 문득 發見하고 確認합니다. 


진실로 꿈에서 깨어난 듯, 이제까지의 허다하게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는 허망한 生覺 망상 망념 번뇌 잡념 상념 의식 마음 卽, 지견 견해 이해 지식 알음알이(識) 분별식 

별심 분별의식이 사라지고 바로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 세상 이 모든 것이 모두 진실

뿐임을 경이롭게 깨닫습니다.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망상 망념 번뇌 잡념 상념 의식 마음 卽 지견 견해 이해

지식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이 다른 物件이 아니라 진실,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본성, 불성, 신성, 주인공, 본래면목, 무위진인, 진심, 본심, 본래마음, 진성, 법성, 空性이었습니다.


위 예화 속의 숭신은 몇 해 동안 도오 화상을 시봉했지만 佛法, 마음, 參禪이니 하는 말에 대해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마음을 공부할 때엔 누구라도 그러하듯 그러한 單語, 

이름에 해당하는 固定된 實體로서의 어떤 對相 境界가 따로 있을 것으로 여기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오 화상은 숭신이 출가한 이래 단 한 번도 불법, 마음(心), 禪에 대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숭신이 어떤 가르침을 주셨냐고 묻자, 도오 화상은 위의 예화와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아시겠습니까? 佛法, 마음(心), 禪, 道,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주인공, 본래면목이 무었인지를?


절대로 시비 분별하는 사량분별심, 생각 망상 의식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보려면 지금 

당장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그것을 곧바로 봐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보고 

있는 이것이 내 본래의 마음, 자기 자신, 본래의 나, 진짜 나, 본래면목입니다. 事實 人間들은 언제나 

이 마음 안에서, 이 마음 자체로서, 이 마음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는 주체 보이는 대상 보는 행위가 다 이 마음이요, 듣는 주체 들리는 소리 듣는 행위가 다 마음이요, 

느끼는 주체 느끼는 대상 느끼는 행위가 전부 이 마음이요, 인식해서 아는 주체 알려지는 대상 아는 

행위가 다 이 마음입니다. 차를 마시는 주체 차 차를 마시는 행위가 다 이 마음이요, 밥을 먹는 주체

먹는 대상인 밥 밥을 먹는 행위가 다 이 마음이요, 인사를 하는 주체 인사를 하는 대상 인사를 하는 

행위가 다 이 마음이요, 잠을 자는 주체 잠 잠을 자는 행위가 다 이 마음입니다.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것이 전부 다 이 마음이 일으키는 작용입니다.


시비 분별하는 말과 생각에 속아 엉뚱한 것을 찾아 구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本來부터 언제나 늘 있었던 

이것, 얻을 수도 없지만 결코 잃어버릴 수도 없는 이 마음, 진정한 자기 자신, 佛法, 禪, 道, 진짜 나, 본성

주인공, 본래면목,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무시무종으로 영원히 파동하는 텅~

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 우주근원에너지정보場을 발견하고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 아니라 깨닫기를 바라는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더 없는 만족,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더 이상 찾아 헤맬 것이 없어지고, 더 이상 찾아 구할 

것이 사라졌습니다. 어리석게도 바깥의 대상 경계를 쫓던 범부의 생각 마음이 다했을 뿐, 달리 聖人의

별도의 특별한 聖스러운 깨달음이라는 또다른 見解인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이대로, 늘 그대로, 항상 이것으로 如如할 뿐입니다.


- 몽지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