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렸다
천평(天平)화상이 행각할 때 서원(西院) 스님을 찾아뵈었다. 천평 늘 말하기를 “佛法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 불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라고 하였다. 하루는 서원 스님이
천평을 멀리서 보고 불렀다.
“종의(從漪 ; 천평의 이름)야!” 천평이 머리를 드니 서원 스님이 말했다. “틀렸다.”
천평이 두세 걸음 걸어오자 서원 스님이 또 말했다. “틀렸다.” 천평이 조금 더 가까이 오자 서원 스님이
말했다. “조금 전에 두 번 "틀렸다"는 말을 내가 했는데 그 "틀렸다"는 말은 내가 틀렸다는 것이냐,
그대가 틀렸다는 것이냐?”
천평이 대답했다. “제가 틀렸습니다.”
서원 스님이 말했다. “틀렸다.” 天平아 그만 두자.
서원 스님이 말했다. “여기서 여름을 보내면서 그대와 함께 이 두 번 틀렸다는 것을 따져보자꾸나.”
천평은 그 때 곧장 그곳을 떠나갔다. 훗날 禪院에 주석하며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 행각할 때 업풍(業風)이 부는 대로 이끌려 서원 노스님이 계신 곳에 이르렀는데 연이어
두 번이나 틀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여름을 보내며 노스님과 함께 따져보자고 하였다. 나는
그 때는 틀렸다는 뜻을 알지 못했지만 내가 발길을 돌려 남쪽으로 가려할 때 이미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 벽암록(碧巖錄)
천평 화상은 일찍이 자기 나름대로 불법을 얻은 바가 있어 “나는 선(禪)도 알고 도(道)도 안다.”고
자부하였으며,“불법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 불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도 病이지만, 머릿속에 무언가 가득 담아놓은 것도 역시 큰 病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다가 뭔가를 깨달아 알았다 하더라도 그 깨달음 역시 微細한 見解, 지견,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이 작용하는 病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천평의 思量分別하는 病을 알아 본 서원 스님은 천평을 위해 하나의 方便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멀리서 천평을 보고 서원 스님이 천평의 이름, 종의를 부르자 천평이 고개를 들었더니 서원 스님이
대뜸 “틀렸다.”고 말합니다. 두세 걸음 가까이 걸어오자 다시 “틀렸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틀렸다"는 말일까요?
틀렸습니다! 천평이 서원 스님 쪽으로 가까이 오자 서원 스님은 조금 전 두 번의 “틀렸다.”는 말이
자신이 틀렸다는 말인지, 천평 그대가 틀렸다는 말인지 묻습니다. 천평이 자신이 틀렸다고 답하자,
서원 스님은 다시 “틀렸다.”고 말합니다.
서원 스님이 천평에게 이곳에서 함께 여름을 보내며 이 “틀렸다.”는 말을 따져보자고 제의했지만,
천평은 곧장 그대로 떠나가 버립니다. 훗날 천평은 선원에서 대중들에게 그 당시에는 자기가 틀린
줄 몰랐지만 남쪽으로 떠날 때 이미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쯧쯧쯧, 역시 틀렸습니다.
우리나라 숭산(崇山) 스님이 젊은 시절 견처(見處)가 생겨 스승인 고봉(高峰)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고봉 스님이 여러 公案을 가지고 물을 때마다 숭산 스님은 거기에 대해 막힘 없이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봉 스님은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고양이 밥그릇이 깨졌다. 이게 무슨 뜻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숭산 스님이 그 質問에 서른 가지가 넘는 對答을 해도 고봉 스님은
“아니다. 틀렸다.”고만 했습니다.
숭산 스님은 ‘왜 올바른 답을 했는데 틀렸다고 할까?’ 의심을 하면서 한참 동안 고봉 스님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生覺이 떠올라서 대답을 했더니 고봉 스님이 마침내 인가를 했다 합니다.
숭산 스님은 어떤 대답을 했기에 인가를 받았을까요?
틀렸습니다!
천평도 틀렸고, 서원도 틀렸고, 숭산도 틀렸고, 고봉도 틀렸습니다. 고개를 들어도 틀렸고, 두세 걸음
걸어도 틀렸고, 자기가 틀렸다고 해도 틀렸고, 자기가 옳다고 해도 틀렸습니다. 모두 다 틀렸습니다.
행각을 떠나기 前에 이미 틀렸고, 불법을 깨닫기 以前에 이미 틀렸고, 불법을 깨달은 후에도 이미 틀렸
습니다. 입 벌리기 以前에 이미 틀렸고, 生覺을 일으키기 以前에 이미 틀렸고, 틀렸다고 말한 것도 이미
틀렸습니다.
도대체 틀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틀렸습니다! 開口卽錯 動念卽乖(개구즉착 동념즉괴) 실상의 진리는 입을 열면 헛소리고 한 생각 일으키면
틀어진다.
- 몽지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공부는 자기를 알기 위한 것 (0) | 2016.08.23 |
---|---|
개구즉착(開口卽錯) (0) | 2016.08.23 |
내려 놓기, 放下着, Letting Go (0) | 2016.08.23 |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마음이 없어졌을 뿐 (0) | 2016.08.22 |
지금 여기 이 순간이 나의 일을 말하고 있다 (0) | 2016.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