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공부는 자기를 알기 위한 것

장백산-1 2016. 8. 23. 13:43
“매사에 성실하고 진실해야 스님입니다”
안동 봉정사 주지 자현스님
[0호] 2016년 02월 17일 (수) 14:35:16안동=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깨달음은 이해가 아니라 체득

깨달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

 

공부를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알기 위한 것

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남을 아무리 알아봐야

질투심과 자만심만 늘어”

 

‘말과 글은 최후의 수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포교’ 지론

 

“일일부작 일일불식

여기서 작(作)이란 비단 농사만이 아니라 참선 염불 포교 불사 등

스님으로서 해야 할 모든 것”



  
 

3선(選)의 조계종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장, 안동 봉정사 주지…. 종단의 대표적인 중진인 자현스님은 기본적으로 선승(禪僧)이다. 지난해 본지가 불광출판사와 공동으로 펴낸 법문집 <밥값 했는가>를 엮으면서 선(禪)에 관한 안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에 실린 스님의 설법은 ‘능청’으로 시작한다. 수행에만 전념하는 수좌들에 대한 지청구로 운을 뗐다. 화두일념이란 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주야장천 ‘잠 타령’ ‘밥 타령’만 일삼는다는 타박이다.


뜻밖이었으나 반전은 흥미로웠다. 그래야 진정한 수행자라는 게 논지다. “어른이 먹는 타령이나 하면 철이 안 들었다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먹는 타령을 하면 그렇게 나무라지 않다. 다시 말하면 수행을 하다보면 어린아이처럼 되어간다. 어른들처럼 현실 이익을 좇고 체면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살아갈 뿐이다.”


잠 타령도 마찬가지다. 꼴불견이기 전에 축복이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에게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고통이다. 근심걱정이 많으니까 아무리 잠을 청해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생각을 쉬어야 잠이 오는 법이다. 반면에 밤낮으로 조용한 곳에 앉아 수행에만 몰두한다면 얼마나 잠이 잘 오겠는가.”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최고의 경지란 어쩌면 고도(高度)가 가장 낮은 곳이다. 이른바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무심(無心). 눈치 때문에 또는 번뇌 때문에, 고파도 못 먹고 졸려도 못 자는 이가 부지기수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지복(至福)이다.


달마(達磨)는 無心, 無分別心을 전하러 동쪽으로 왔다. 이후 마조(馬祖)는 평상심(平常心)으로 임제(臨濟)는 무위진인(無位眞人)으로, 단순하고 질박한 삶의 행복을 노래했다. 


자현스님은 총무원장 자승스님 등과 함께 지난 1월30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한국인의 원혼이 숨 쉬는 일본 조세이 탄광에 다녀왔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한 위령재를 마친 후 야마구치현(縣)에 위치한 임제종 사찰인 상영사(常榮寺)에 들렀다. ‘불생불심(不生佛心)’이라고 쓰인 편액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가 아는 척을 했다. 일체의 조작과 가식을 부정하는 조사선의 입장에서, ‘부처의 마음조차 내지 마라’는 일반적인 풀이를 내놓았다. 


가이드의 너스레 앞에서 스님은 한 번 더 꺾었다. ‘부처라느니 마음이라느니 生覺하지 마라.’ “無心에 얽매어버리면 이미 無心이 아니다”라면서 “無心은 그저 無心일 뿐이니 無心, 眞理, 實相, 부처, 마음, 자기 자신, 본래면목이라는 이름을 말로 설명하거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자고로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 했고 ‘동념즉괴(動念卽乖)’라 했다. 입 떼는 순간 진실과는 멀어지고, 머리 굴리는 순간 제풀에 당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 가는 대로 행하는 순간에 참된 즐거움이 있다. 자현스님이 이야기하는 공부도 이렇듯 ‘본래부처(本來佛)’임을 깨닫기 위한 일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結局 自己를 알기 위함입니다. 관건은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自己가 아닌 글만 배우게 되고, 좌선을 하다보면 앉아있는 시간과 자세에만 집착하게 되고, 염불을 하다보면 읊조리는 일에만 연연하게 되는 게 중생의 오랜 습관입니다. 정작 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남을 아무리 알아봐야 질투심과 자만심만 늘어납니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 하는 포교가 짐짓 의심스럽다. ‘힐링’이 대세인 시절이지만, “말 잘한다고 글 잘 쓴다고 큰스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말과 글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포교”를 강조했다. 2007년 2월 안동 봉정사 주지에 부임하면서 복지관을 수탁하고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건네며 민심을 모았다. 이름만 남았던 안동불교사암연합회도 재건했다. 유교의 중심지이자 가장 보수적인 고장에서 불교를 알리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설득하기보다는 머리를 숙였다. “내가 조계종 스님입네 비구입네” 거들먹거렸다면 절대 이뤄지지 않았을 화합이다.


스님의 無心, 無分別心은 오랜 인내의 결과다. 100일 용맹정진을 세 번 했다. 군에 입대해서도 오신채는 물론 멸치부스러기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참고 참으면 비로소 무뎌진다. “흔히 수십 년 안거정진한 분들을 ‘절구통 수좌’라며 존경을 표합니다. 일견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온종일 앉아있는 것을 세인들은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스님들이 유식해서 그렇게 했을까요? 아니면 무식해서 그렇게 했을까요? 깨달음이란 이렇게 시비를 초월한 겁니다.”


“중은 놀아도 절에서 놀아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훈계도 가슴에 담았다. 30년 넘도록 좌복을 떠나지 않은 이유다. 스님이라면 먼저 스님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춰야 하는 게 우선이다. 동타지옥(同墮地獄). “수행이 덜 된 상태에서 섣불리 중생구제에 나섰다간 같이 망하게 마련이다.” 최근 종단의 이슈로 떠오른 깨달음 논쟁에 대해서도 견해를 피력했다. “깨달음은 이해가 아니라 체득”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말 그대로 몸으로 터득해야, 뼈를 녹여야만 법(法)을 얻을 수 있다는 지론이다. “단 며칠이라도, 아니 단 몇 분이라도 나를 알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깨달음이란 결과 이전에 깨달아가는 과정 자체가 곧 깨달음입니다. 금생에 깨치면 좋겠지요. 그러나 비록 못 깨치더라도 다음 생에는 깨칠 수 있는 선근을 심어놓는 일이니 정진해야 합니다.”


  
 

자현스님은 어려서부터 유별났다. 다른 형제는 모두 독실했던 모친을 따라 절에 가는데 유독 스님만 거부했다. “굳이 몸이 절에 가야 절에 가는 거냐. 마음이 이미 절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코흘리개의 반박에 어머니는 혀를 내둘렀다. 나중에 출가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나는 네가 정말 무서웠단다.” 초등학교 때 이미 신약 구약 성서와 논어와 초발심자경문을 뗐다. 지적 호기심이 대단했다. 고3 시절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하면 스님이 되는 줄 알고 진로를 정했으나, 인연이 맞지 않아 불교와 무관한 대학에 들어갔다. 그래도 불교학생회가 있었다. 10·27법난이 터졌고 민중불교운동을 하다가 평생의 은인을 만났다.


1981년 6월19일. 자현스님은 출가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은사인 근일스님과의 만남은 그만큼 극적이었다. “처음 보는 순간 반해버려”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자 했다. 그러나 근일스님의 근엄한 기세에 눌렸다. 세 번째 찾아가서는 작심을 했다. “내 오늘 절에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 결연한 마음으로 마주했다. “또 왜 왔냐?” “오늘은 쫓아 보내도 절대 안 갈 겁니다.” “내가 언제 나가라든?” 혼자서 지레 겁먹고 움츠렸던 것이다. 마음속에 처음으로 무심이 싹트던 시점이다.


‘하루 일하지 않았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주장한 백장(百丈) 선사의 유명한 잠언이다. 자현스님은 여기서 작(作)이란 비단 농사만이 아니라 “스님으로서 해야 할 모든 것”이라고 밝혔다. 참선 염불 포교 불사 등등이 전부 ‘작’이다. 그리고 스님의 품격을 가르는 기준은 ‘작’의 진정성이다. “스님다운 삶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매사에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제시했다. 스님이 게으르면 중생이 원하는 행복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또한 스님이 진실하지 못하면 스님 자신이 비난을 받고 종단이 망신을 당하고 부처님까지 욕을 먹는다. “처음엔 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덜 먹을 욕을 곱절로 먹게 된다.


■ 자현스님은…

 

1981년 근일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경북대를 졸업했으며 1982년 사미계를 1985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고운사 봉암사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백양사 용화사 부석사 등에서 50안거를 성만했으며 영주 부석사 선원장과 제14, 15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16대 중앙종회 수석부의장이자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장, 안동 봉정사 주지, 안동장애인종합복지관 운영위원장 등으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3178호/2016년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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