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지혜의 칼, 문수보살

장백산-1 2016. 8. 25. 16:02

지혜의 칼, 문수보살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시 영산회상에서 說法할 때 500명의 비구가 있었습니다. 모두 四禪定과 五神通을 

갖추었지만 아직 깨달음을 터득하지 못 했습니다. 이 오백 비구들은 각자가 宿命通으로 과거전생에 부모

를 죽이는 등 무거운 罪業를 지었음을 보고는 疑心을 품고 法, 깨달음, 진리, 도를 터득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비구 대중의 疑心을 꿰뚫어본 文殊보살이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석가모니如來를 몰아붙였습니

다. 이에 석가모니여래 세존이 文殊보살에게 말했습니다. "멈추어라. 멈추어라. 逆罪를 지어서는 안된다.

석가여래인 나에게 害를 끼쳐서는 안된다. 내가 반드시 害를 입는다면, 착하기 때문이다. 文殊사리여! 

그대는 本來부터 나와 남이라는 分別이 없었는데 단지 속마음으로 나와 남을 區分해서 보는구나. 속에서

分別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그는 반드시 害를 입을 것이다. 이것을 일러 害를 끼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오백명의 비구는 本來부터 스스로의 마음은 꿈과 같고 幻想과 같으며, 꿈과 환상 속에는 나와 남이

는 分別이 없고, 나아가 부모 자식이라는 分別도 없는 것이라는 事實을 깨달았습니다. 오백 비구는 하

나같이 文殊의 智慧를 찬탄하는 게송을 지어 읊었습니다.


"문수 큰 智慧의 보살이여! 法의 밑바닥까지 깊이 通達하셨구나. 스스로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서 석가

모니如來의 몸을 위협하였네. 칼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부처님 역시 그러하셔서 하나의 모습일 뿐 둘이 

없다네. 모습도 없고 생겨남도 없으니 이 속에서 어떻게 죽겠는가?"


오백 명의 비구란 오온(五蘊) 즉, 사람의 몸, 느낌 감정, 생각 망상 번뇌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인식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識)이라는 다섯 가지의 에너지 덩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人間이 알고 있는 나라고 하는 存在는 獨立的인 固定不變하는 實體로 存在하는 個體가 아니라 단지

몸, 느낌 감정, 생각 망상 번뇌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도 의지, 인식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

알이(識)이 어우러져 지금의 現象으로 現示되어 드러나 있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서의 因緣일 따름

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意識은 오온 덩어리가 뭉쳐서 어우러진 이 因緣을 나라고 固定觀念化 시켜버립니다.

단지 나뿐만이 아니라 經驗되는 이 세상 이 모든 것이 그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일어나는 瞬間의 因緣일 

따름인데,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이 各各 따로따로 分離되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固定觀念化 시켜버립니다.

이런 固定觀念  이것이 世上의 참모습에 어두운 우리들 人間의 精神世界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이런 

고정된 실체가 결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事實에 通達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이 여러 가지 것, 존재, 現象으로 現示되어 드러나지만 

그것들은 전부 다 實際는 아무것도 독립적으로 고정된 實體가 없는 것들입니다. 위 이야기 속 文殊보살은 

이 事實을 오백 비구에게 몸소 깨우쳐주려고 演劇(연극)을 한 것입니다. 이 肉體를 中心으로 나라는 한 個

人이 따로 존재한다고 錯覺해서 그렇게 여기고 믿기 시작하게 되면, 나의 태어남이 있고, 나를 낳은 부모가 

있고, 나를 낳아준 부모가 태어난 일, 나를 낳은 부모가 태어난 날, 그 부모가 죽은 사건, 그 부모를 죽인 사

건 등등등,...뿐만 아니라 나를 固定된 實體로 認識하고 있기 때문에 無常하여 끊임없이 變할 수밖에 없는 

나, 나의 일, 나의 성취, 나의 실패 등등 이것들로 인해 빚어진 불만족, 갈등과 번뇌, 이것을 벗어나는 깨달

음의 세계 등등 끝없이 分化되어 우리 人間들은 分離 分別하는 마음속에서 길을 잃고 갈등과 고통 속에 빠

집니다.


文殊보살은 칼을 들어 分別하는 마음과 虛妄한 生覺 속에서 또 다시 如來라는 觀念, 分別心을 지어내서

여래, 부처를 숭상하는 인간들의 마음 속에 세운 부처라는 相, 如來라는 相을 베어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文殊보살이 보여주는 이런 行動은 얼핏 보면 오백 비구가 과거 전생을 보고 의심을 품고 보인 행위와 다

르지 않습니다. 如來라는 고정된 실체의 對相 境界가 있고 그것을 칼로 베어내서 부수려는 分別心입니다.

이때 석가모니 세존이 문수에게 멈추라고 합니다. 本來 아무런 分別이 없는 착한 마음인데 如來라는 헛된

相을 허망하게 세우고 虛想인 如來 그것을 추구하는 마음도 本來마음을 害치는 것이지만, 깨달음이라는 

헛된 相을 虛妄하게 세워서 그 虛想을 相對로 여겨서 부수려는 마음도 본마음을 害치는 것이다.


智慧의 칼이란 이 세상의 진실한 모습, 實相에 밝은 心眼, 慧眼을 말하는 것입니다. 人間 누구나 스스로가 

오직 마음 하나뿐임을 깨달아 나, 부모, 깨달음, 열반, 해탈, 부처(佛), 如來, 본래면목, 주인공, 불성, 신성,

진성, 자성, 본성, 진심, 본심, 본래마음,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등등의 모든 이름 모든 것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텅~빈 空임을 깨닫게 돕는 無分別心의 智慧, 無心, 無執着心이 智慧의 칼인 것입니다.

이 智慧는 어디에 별도로 특별하게 따로 없는 智慧이기에 智慧의 칼이라는 또 다른 物件이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인간 스스로가 이 세상 모든 것이 진실로 마음 하나뿐임에 通達한다면 마음 하나뿐인 세상에는 如來

도 부처도 하느님도 특별하게 따로 없지만 허망하고 헛된 分別妄想을 부수는 별도의 智慧의 칼도 따로 없

다는 事實을 밝게 볼 것입니다.


善知識들이 人間들로 하여금 허망하고 헛된 온갖 分別心과 허망한 생각, 妄想, 幻想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 없다 없다 하고,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말을 하지만 이런 方便 이것은 모두 文殊가 오백 비구를 

위해 慈悲로운 마음에서 分別을 일으켜 지혜의 칼을 빼든 것과 같습니다. 있다고 여기는 이에게 이것을 

부수려고 없다고 하는 것이고 쥐고 있는 이에게 쥘만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무언인가에 사로잡혀 있으면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의 진실한 모습, 實相을 밝게 볼 수 없

기 때문입니다. 사로잡힘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 이 모든 것을 보면 진실로 놓아버릴 것, 놓아버릴 일도 

본래부터 없었음을 스스로 터득할 것입니다.


우리 人間들이 진실로 깨달아야 할 事實은 文殊의 칼이라는 智慧의 보검을 잘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백명의 비구가 그랬던 것처럼 이 世上 이 모든 것,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착한 본래마음, 본성,

본심, 불성, 신성, 자성, 진성, 진심, 본래면목, 주인공, 진리, 깨달음, 道, 法, 禪, 緣起空性場, 無始無終

으로 영원하게 파동하는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 우주근원에너지정보장, 바로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라고 이름하는 것이 온갖 現象으로 現示되어 表現된 分別相임을 밝게 보아, 나, 부모, 과거, 

여래, 부처, 지혜의 칼이라는 허망하고 헛된 관념 개념에서 깨어나게 되고, 또한 문수가 보인 자비로운 

쇼도 환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마음은 온갖 현상을 현시해서 이 세상 이 모든 것으로 드러내지만 이렇게 표현된 이 세상 모든 것은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허망한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것입니다.

잠시잠깐 우주법계의 인연에 따라서 어찌하여 이렇게 아무 실체도 없이 드러난 것인데 인간은 허망하고

헛된 온갖 시비 분별하는 분별 망상 번뇌에 가려서 이 세상 이 모든 것이 자기 본마음 하나뿐임을 깨닫

지 못하고 生死라는 輪廻, 生死의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출렁거립니다. 나라는 존재, 나를 낳아준 부모, 

태어난 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시간들, 고통들, 깨달음, 해탈마저도 따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의 참모습, 실상을 바르게 볼 뿐입니다.


- 릴라님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