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인간의 마음은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깃발같다

장백산-1 2016. 8. 30. 16:05

인간의 마음은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깃발같다


인간의 마음은 부는 바람 앞에 마구 흔들리는 깃발처럼 인간의 육감(눈, 귀, 코, 혀, 피부, 생각) 앞에 

다가오는 온갖 대상 경계에 마구 나부끼고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평생동안 경계 따라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사는 모습입니다.


인간의 六感 앞에 힘겹고 괴로운 경계가 다가올 땐 인간의 마음은 울고불고 괴로워하며 답답해 어쩔할 

줄 몰라 하다가, 즐겁고 행복한 경계가 다가올 땐 희희락락 웃고 즐거워하며 한없이 행복에 겨워합니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깃발은 바람의 방향이며 강도에 따라 쉼없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깃발은 그렇게 

끊임없이 나부끼며 흔들리지만 깃발을 지탱하고 있는 깃대는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움직임이 없이 

고요합니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림이 없이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고 의젓하고 당당합니다. 


그러나 깃대 또한 대지에 얕게 꽃혀 있다면 어느 정도의 바람은 이겨내겠지만 거센 바람 앞에서는 뿌

가 뽑혀 나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깃대의 뿌리가 대지에 깊게 내린 깃대는 뽑히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얼마만큼 마음 내면에 뿌리를 깊고 견고하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외부 대상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의 정도는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마음의 뿌리를 깊게 

내면에 내리고 있으면 그 어떤 내외부의 대상 경계가 다가와도 마음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맑고 당당한 마음입니다.


참된 수행자의 마음의 경계는 참으로 내외부의 대상 경계 앞에 서야 如實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의 마음이 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외부의 대상 경계와 맞닥뜨리면 참된 맑음, 

참된 수행자의 마음의 실상이 오롯히 드러납니다.


맑은 물 한 컵과 흙탕물 한 컵을 한동안 가만히 놓아 두면 양 쪽 다 모두 맑게 보입니다. 그러나 막대로 

두 컵에 들어있는 물을 휘저어 보면 맑은 물은 그대로 맑지만 흙탕물은 온통 더러워지게 마련입니다.


가만히 명상해 봅시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가 말입니다. 내외부의 그 어떤 경계

가 나의 마음을 휘젓더라도 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그대로 고요하고 맑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아니

면 실체가 없는 허망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외부의 대상 경계를 따라 마

이 천차만별로 흔들리고 요동쳐서 산산히 흩어지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수행자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은 후자 쪽일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또다시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외부의 대상 경계 없는 인생, 삶, 현실, 세상은 없으며 내외부의 대

상 경계와 마주해서 '욱' 하는 마음이나 환희하는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제 아무리 수행자라 할지라도 내외부의 대상 경계가 다가오면 전생이나 과거에 지어논 業識에 따라 마음

은 동요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행자와 비수행자의 마음이 내외부의 대상 경계를 대함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수행자의 마음은 그 어떤 내외부의 대상 경계와 마주하더라도 그것들이 단지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

내외부의 대상 경계를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中心이 내면에 깊게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경계라

도 마땅히 바로 녹여 낼 수 있습니다. 실체가 없는 허망한 내외부 대상 경계를 대함에 있어서 마음 속에

서 올라오는 온갖 分別心, 알음알이(知識), 분별의식, 분별식, 이해, 지견, 견해로 그것들을 대하는 것이 

닌 內面에 뿌리깊게 내려져 있는 맑은 한마음, 한생명, 본성의 주장자로써 경계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내외부의 대상 경계,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을 대면할 때 밝게선 마음

의 주장자, 본래마음, 본성으로써 실체가 없는 그것들을 밝게 녹여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외부의 온

갖 대상 경계라도 그것들의 실체를 알고 내면의 본래면목 자리에 넣어 녹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 그 어떤 내외부 대상 경계라도 執着하거나 붙잡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마음 내면에 굳게 세운 모양

이 없는 마음의 주장자를 잡음 없이 굳게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일체의 온갖 정신적 물리적인 현상으로 현시되어 드러나 있는 일체의 대상 경계를 집착해서 

붙잡지 않고 모두 다 놓아버릴 수 있는 힘, 放下着 하는 마음의 힘이 나오는 겁니다. 방하착(放下着)의 

밝은 실천 수행력, 굳센 마음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깊게 뿌리 내린 나무가 아무리 큰 폭풍우나 눈보라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듯이 수행자 마음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마음의 주장자가 굳고 깊을수록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런 큰 경계에도 결코 흔들림 없이 녹여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주장자를 굳게 잡고 있다는 말은 마음 內面에 자리한 언제나 빛나고 밝은 근원의 나에 대한 우직

하고 굳은 믿음을 가진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의 中心은 오직 내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과

내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밝은 깨침의 부처님 종자, 佛性을 온전히 믿는 것이 마음의 주장자를 굳게

믿고 붙잡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마음 내면에 中心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자리잡은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며 自由롭고 당당합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그 어떤 내부나 외부의

대상 경계를 대면하더라도 항상 흔들리지 않고 如如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령 하늘이 무너진다고 하더

라도 죽음이 바로 눈 앞에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추호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이 如如不動하게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흔들림이 없이 如如不動할 수 있는 이유는 내 마음 내면에 깊게 뿌리내려진 마음의 주장

자, 인간이 본래 부처님 생명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그 사실을 확실하게 터득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

다. 生과 死라는 실체가 없는 虛妄한 現象에 따라서 마음의 주장자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아니라는 眞實

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어떠합니까. 마음의 中心이 온통 내부적 외부적인 대상 경계에 따라 놀아납니다.

직장 상사가 나를 비난하면 그 비난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 괴로운 마음을 내고, 친구의 이기적인 마음에 

마음을 빼앗겨 성내고 화내는 마음을 내고, 돈에 마음을 빼앗겨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幸, 不幸의 마음

을 만들어 내고, 지위의 높고 낮음에 마음을 빼앗겨 그 지위에 따라서 상대방을 높고 낮은 상(相)으로서

대하며, 이성에 마음을 빼앗겨 집착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만들며...이렇게 그렇게 내외부적인 온갖 경계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허수아비처럼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 내면의 中心이 굳건하게 딱 서지 않으니 온갖 내외부적인 因緣에 따라서 다가오는 경계를 

執着하여 마음 내면의 中心이 실체가 없는 허망한 내부 외부의 대상 경계로 옮겨 붙게 되고 그럼에 따라 

실체가 없는 허망한 내외부의 대상 경계와 마음이 因緣이 되어서 또 다른 業識의 어두운 마음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허망한 내외부적인 경계에 따라서 괴롭다거나, 성낸다거나, 탐낸다거

나 하는 등 말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과정 이것을 일컬어서 輪廻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주장자 밝게 선 수행자는 경계의 허망(虛妄)한 實體를 올바르게 관찰(觀察)해서, 마음의 

中心이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내부 외부의 대

상 경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게 마음의 中心을 굳게 세우고 있으므로 내외부의 경계에 마음의 中心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합니다. 마음의 중심, 주장자 밝게 서 있다면

두려울 일도 없고, 괴로울 일도 없고, 그렇다고 즐거운 마음에 크게 들떠 있을 일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의 관심의 대상은 외부의 경계가 아닌 오직 내면의 경계이기에 온갖 경계를 대함

에 있어서 경계를 탓하지 않고 自己 內面을 채찍하고 다스릴 뿐입니다. 이런 밝은 수행자에게 내외부적

인 모든 대상 경계는 단지 내 마음을 닦는 수행재료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음의 中心을 잡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이 허망하고 헛된 실체가 없는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이슬, 

번개, 그림자 같은 내외부의 경계에 속아서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마음의 중심, 마음의 주장자를 굳게 붙

잡고 사는 수행자는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을 닦아 부처가 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

간 이 자리의 현존, 부처님 생명, 본래부처, 영원한 진실생명으로 이 세상, 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중심, 마음의 주장자가 밝고 굳게 서면 내가 하는 말 한 마디가 부처의 말씀이 되고, 내가 행하는 

行動 하나 하나가 부처가 하는 行動이 되며, 내가 한 生覺을 일으킴이 부처가 일으키는 생각이 되는 것

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온갖 정신적 물리적인 현상으로 현시되어 드러나느 허망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

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내외부적인 일체의 대상 경계를 어느 것 하나 집착해서 잡지 않고 참나 근본 

자리에 내려놓아 녹이며 살아가기에, 일체의 대상 경계를 밝으신 부처님, 우주대광명, 본래의 나에게 바

치고 공양올리며 살아가기에, 부처님, 근원의 나에게 다 일임하며 살아가기에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나'가 붙을 자리가 근원의 나, 부처님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좁은 소견으로서의 '나' 小我가 없으니 '全切로서의 나' 大我 즉, 부처님으로서 살아가는 겁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