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16. 제 눈 속의 들보

장백산-1 2016. 9. 27. 12:36

유당| 2016.09.27.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F9lO/2033 


[선(禪)으로 읽는 복음] 16. 제 눈 속의 들보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

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

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1~5]


"남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

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소경이 어떻게 소경의 길

잡이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러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 제

자는 다 배우고 나서도 스승 만큼밖에는 되지 못한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더러 '네 눈의 

티를 빼내 주겠다' 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

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내 줄 수 있다.“ [누가복음, 6:37~42]


육조단경? ? 무상송(無相頌)?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만약 진실되게 道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허물을 보지 않네.

만약 다른 사람의 그릇됨을 본다면 스스로 그릇됨이니 도리어 어긋나네.

다른 사람은 그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고 하면 내가 그릇됨이니 스스로 허물이 있네.

다만 스스로 그릇된 마음을 버리면 번뇌 망상 분별을 모두 다 쳐 없애 부숴뜨리네.


다른 사람의 허물을 判斷하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허물을 判斷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는 

그것이 자기 자신의 잘못도 비판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찌르고 자르는 그 칼로 자기 자신마저 찌르고 

자를 것입니다.


이 세상을 상대로 是非 分別 比較  判斷하는 主體를 자기 자신으로 誤認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도적

을 아들로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 길이에 맞춰서 늘이고 자르는 프로쿠르테

스처럼, 언젠가는 자기 자신도 그것에 희생될 것입니다. (잠시 묵상)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모든 事物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을 떠나서 바깥에 따로 事物이 존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보고 있는 그 눈(眼)이 바로 보이는 對相과 하나입니다. 보이는 

對相이 그대로 그것을 보고 있는 눈 자체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과 세상을 보고 있는 눈 자체가 둘이 아니 이 하나뿐인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이 

밝아야 세상이 밝게 보이는 법입니다. 이 마음의 눈이 티끌이나 들보에 가로막혀서는 안 됩니다. 分別과 

妄想, 나라고 하는 생각(我相), 我執과 我滿에 마음의 눈이 멀어서 멀쩡한 마음의 눈을 못쓰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생각도 마음에 담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고 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病이 납니다. 눈에는 어떤 것도 들어가 있어서는 안 됩

니다. 한 생각도 마음의 눈에 담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한 티끌도 없는 청정한 마음의 눈에 있는 그대로의 

眞實한 세상이 비칩니다.  (잠시 묵상)


바깥의 사물을 향하던 마음의 눈길을 그것을 보고 있는 마음의 눈 자신에게 돌리십시오. 보고 있는 마음의

눈을 보십시오. 마음 바깥에 있는 타인과 세상을 향하던 分別하고 判斷하는 마음의 눈을 자기 자신, 마음의 

눈에게로 돌려 향하게 하십시오. 分別과 判斷 그 自體를 分別하고 判斷해 보십시오. 완전히 멈추십시오!


(침묵)


보는 눈도 보이는 대상도 없는 여기, 분별하고 판단하는 자도 분별되고 판단되는 것도 없는 이 자리,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지만 죽어있지는 않습니다. 텅~비어있지만 생생하게 살아서 생동하고 있습니다. 고

요하지만 또렷합니다.  침묵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름, 개념, 관념, 모양, 생각, 지식, 지견, 견해, 이해, 분별심, 알음알이, 분별심, 분별의식이 모두 자

기 마음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이자 대들보입니다. 그것들을 모두 빼내십시오. 마음은 마음이라는 이름이 아

닙니다. 의식은 의식이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진리는 진리라는 모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그저 그냥 방편상으로 사용하는 강을 건너가는 데 사용하는 뗏목과 같은 수단

으로서의 이름일 뿐입니다.


虛空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분별과 판단을 멈추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마음의 눈을 뜨십시오. 아무 노력이 없는 自覺의 性稟이 온 우주, 온 세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事實을 깨달으십시오. 태초 이전부터 태초 이후로 어떤 分離와 分裂 없이 온전히 全切로 존재하고 있었음

을 깨달으십시오.   (침묵)


-몽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