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몰라야 크게 깨달을 수 있다 / 혜암스님
마음을 이리 한번 저리 한번 굴리면 마구니(시비심, 분별심, 사량심, 알음알이(지식), 지견, 견해, 이해)
가 마구 마음에 덤벼 버립니다. 마구니가 마음을 속여 먹을려고 그 前에 몰랐던 마구니들을 알게 합니다.
몰랐던 마구니를 알게 되면 하늘을 쑤실 용기가 나고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인 것 같은 용기가 막 납니다.
조금 공부를 하다 보면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法談도 나누고 게송(揭頌)도 지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것은
마구니가 유혹해서 그러는 것이지 내 마음이 시켜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알아지는 것은 그만두고 공부는 공부 속으로 들어갈수록 깜깜해져야 합니다. 확실하게 아무것도 분명히
몰라야 크게 깨달을 수 있는 분(分)이 있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알음알이(識)이 남아 있는 사람은 깨달을
分이 없습니다. 힘(精神)이 한 군데로 뭉쳐지지 않으니까 깨쳐지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아무것도 분명히
몰라야 합니다.
아는 것(알음알이)가 있으면 話頭가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화두가 크게 불덩이처럼 뭉쳐지질 않습니다.
뭘 조금 안다는 生覺이 화두의 氣運을 뺏앗아 가기 때문에 화두가 뭉쳐지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마
구니들이 공부를 못하게 방해하려고 온갖 꾀를 부립니다. 가만히 있어도 하늘의 별도 보이고, 해도 보이고,
오십리 밖에서 누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것이 道人인 줄로 錯覺하는 사람들은 죽은 것입
니다. 사람 欲心에 오십리 밖에서 누가 온다, 무슨 일이 생긴다, 그런 것을 알게 되면 재미가 있어 그 능력
을 써먹고 싶거든요. 조그만 살림살이에 호기심이 생겨 그런 일이 또 있으면 좋겠다,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완전히 마구니의 노예가 됩니다.
마구니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다가도 언젠가는 골탕을 먹입니다. 구덩이에 데려가 떨어져 죽게 하기도
하고, 손가락도 잘라지게 하기도 하고, 또 공부하다 보면 마구니가 심통이 있어서 나를 따라 극락세계에
가자고 꼬입니다. 마구니의 신통력으로 구덩이 골짜기가 전부 대로로 보인답니다. 낭떠러지가 큰 신작로
로 보여 따라가다 떠러져서 죽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스승 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토굴에 가더라도 이런
常識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많은 사람들은 공부하는데 장애가 많습니다. 복이 없으며 마장이 생겨 공부도 못합니다. 본인들은
마구니들이 공부를 뱡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수행자도 그렇습니다. 이 스님은 여자를 좋아하는
지,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무서워하는 것을 싫어하는지 , 그런 것을 보아 공부를 방해한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常識的으로 마구니들이 시간 시간 우리를 따라다니며 방해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일, 기분 나쁜 일이 있어 공부하지 못하면 그것이 마구니가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임
을 알아야 합니다. 집안이 망해도 공부하겠다 하고 공부하면 마군이가 방해를 못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끓는 물 속에는 파리나 모기가 덤비질 못하지 않습니까? 分別 妄想 煩惱 幻想을 피우지 않고 화두를 들면
마구니는 물론 염라국에서도 나를 잡아가지 못합니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헤아리는 생각 마음, 분별심, 알음알이, 지식, 지견, 견해를 버리는 공부가 화두
공부인데 복을 지었다, 착한 일을 했다는 상(相)을 내면 귀신들의 종노릇을 면치 못하고 자신은 죽습니다.
나고 죽는 生死輪廻의 괴로움을 면치 못할 뿐더러, 妄想 분별 환상으로 살기 때문에 귀신의 종이 되어 버
립니다.
마음을 비워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남과 비교하여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니 우습습니다. 저
사람도 송장, 나도 송장, 저 사람도 허망하고, 나도 허망하고, 다투는 일도 허망한데 이겨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세상일은 송장들이 시시한 허망한 실체가 없는 텅~빈 껍데기 물건을 놓고 싸우는 것과 똑
같습니다. '바깥으로는 마음의 모든 投影을 끊고 안으로는 망상 분별하는 마음을 비워라' 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 몸을 가지고 살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기는 하되 하는 일
없이 하라' 는 그 말입니다.
밥을 먹어도 욕심으로 먹지 말고 공부하기 위해서 먹고, 가도 가는 것 없이 가고, 살아도 공부 하기 위해서
살아야지, 이 몸이라는 도둑놈 도와주어 이익 되는 것이 뭐 있습니까? 아무리 먹어 봐야 늙기만 하고 똥 쌀
일만 있습니다. '먹기 위해 돈을 버는데 안 먹고 뭐하느냐?' 그런 답답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人間들은 먹기 위해서 이 世上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온 분명 무슨 理由가 있습니다. 人間은
道를 닦으려, 主人을 찾으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 또 반대로, 지난날 지은 罪業를 받으려고 이 세상에 왔습
니다. 그러니 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았으면 이런 몸을 받아 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罪業를 받는 그릇이 이 肉身, 몸인데, 어찌 죄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까? 인연 따라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가 해야만 할 일은 부지런히 내 마음을 찾는 道를 닦는 일입니다. 이런 理致를 알면 부러워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얼굴 잘 생긴 사람,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 유식한 사람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에서 필요한 知識을 배워 아는 것은 有識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속아 얽혀 살고
있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록 知識을 배웠다고 한들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 천(天)하면 하늘이 어떻게 생긴 줄 알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하늘이 하늘입니까?
따지(地), 땅에도 한량없는 이치가 많은데 따지(地) 해서 땅 소식을 어떻게 압니까?
마음 심(心)해서 마음을 어떻게 압니까? 억만년을 배워도 배워서 아는 知識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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