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으로 읽는 복음] 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6~7]
예수가 말씀하신 내용에서 ‘나’는 무엇일까요? (잠시 묵상)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區別되는 개성을 가진 특정한 肉體를 ‘나’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육체의 ‘나’
는 반드시 언젠가는 없어지는 존재로서 永遠한 ‘나’, 예수가 말한 길이요, 眞理요, 生命으로서의 ‘나’, 진리
인 아버지에 이르는 ‘나’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사 말한 ‘나’는 무엇일까요? (잠시 묵상)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가장 확실하고, 가장 자명하고, 가장 분명하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굴려서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로서의 ‘나’가 존재한다는 이 사실입니다. 그 ‘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무엇, 온갖 현상과 그 현상의 끊임없는 변화 작용을 知覺하고 있는
무엇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은 ‘나’는 ‘나’를 모르겠다고 하는 것마저 이 ‘나’를 증거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묵상)
그 무엇, 그 '나'는 마치 빛과 같아서 어둠 속에서 빛이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 모든 대상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빛 자신 역시 환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빛의 반사에 의해서 드러나는 對相을 통해서 빛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이 될 뿐, 빛을 다른 빛을 통해 확인할 수는 없는 겁니다. 온 우주에 오직 이 하나의 빛, 이
하나의 ‘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오직 하나뿐인 마음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비추고, 모든 것을 지각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지만, 그 ‘나’를 비추고, 지각하고,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눈이 그 눈을 볼 수 없듯이, 칼이 칼 자신을 자를 수 없듯이, 손이 손 자신을 잡을 수 없듯이.
따라서 이 ‘나’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압니다. 이 ‘나’는 무시무종으로 상주불멸 불생불멸의 永遠한
生命, 영원한 존재입니다. (잠시 묵상)
이 '나'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 이 순간 이렇게 있습니다. 이 '나'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냄새 맡고 있습니다. 이렇게 맛보고 있습니다.이렇게 촉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나’는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 ‘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
내용도 없는 텅~빈 마음 하나, 순수하고 명징한 순수한 의식 자체, 텅~빈 바탕 공간의식 하나, 부분이 아
닌 全切로서의 存在가 예수가 말씀한 이 ‘나’입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의 존재인 이 ‘나’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침묵)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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