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친기] 박근혜 정권은 사법부를 어떻게 길들였나
입력 2016.12.20 14:56 수정 2016.12.20 15:06 댓글 123개
검찰 출신 '대법관' 자리 만들기 힘쏟고
보수단체·여당 의원 '거슬리는' 판사 압박
국정원 동원 대법원장 등 사찰 의혹까지
고위 법관 행정부 이동도 독립성 악영향
[한겨레]
흔히 ‘사법부 독립’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정부·국회 뿐 아니라 법원 내부로부터도 독립한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사법부를 ‘길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통합진보당 해산심판·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처분·KBS 노조 파업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재판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법원의 영장 기각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문제 판사’들의 실명도 거론합니다. 대법관 교체 시기가 다가오자 검찰 출신 대법관 배출을 위해 미리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를 기반으로 박근혜 정권이 사법부를 어떻게 길들이려고 했는지, 그 궤적을 추적해보았습니다.
김영한 전 수석 업무일지에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철학’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5·16 쿠데타를 정당하다며 4·19 혁명 이후 상황을 ‘안보위기·사회질서 문란’의 혼돈기라고 폄훼합니다. 법치를 저버린 유신헌법마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요. 1971년 7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어렵게 따돌리고 3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시킨 뒤 유신헌법을 통과시킵니다. 종신집권 길을 열고, 대법원장 이하 모든 법관 임명권도 장악했지요.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는 반공법 사건에서 자주 무죄를 선고한 판사의 약점을 잡기 위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파괴한 흑역사를 정당하다고 여긴 겁니다.
박근혜 정권의 사법부에 대한 시각도 국정철학만큼이나 시대착오적입니다. 2014년 8월12일 업무일지에는 “보수·진보 갈등 관련 판결시 진보 쪽에 유리하게 선고하는 관행 문제”라는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9월6일엔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론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 (상고법원 or) 다 찾아서”라는 주문이 나옵니다. “법원 지도층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 필요” “법관 성향-트집거리 주지 않도록 치밀 준비요” 등 구체적 방법도 제시됐습니다.
왜 하필 이날 청와대는 법원 길들이기 논의에 집중했을까요? 바로 전날, 국정원·검찰이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이라고 지목해 기소한 탈북자 홍강철씨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2월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최재형)도 1심과 마찬가지로 홍씨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작성한 진술서와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입국하는 모든 탈북자는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 들어가 격리된 채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법원은 국정원이 합신센터에서 사실상 수사를 하면서 법률로 보장된 변호인 조력권이나 진술거부권을 홍씨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합신센터에서 한 자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출신 김기춘 전 실장은 이러한 재판 결과를 재발해서는 안 될 ‘비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인 듯 합니다.
■ ‘검찰 출신’ 대법관을 향한 집념
청와대는 양창수·신영철 대법관 후임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2014년 6월24일 업무일지엔 대법관 후보에 나설 만한 사법연수원 16·17기 현직 검사들과 2009년 서울북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박상옥 당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등의 이름이 나열돼 있지요. 일주일 뒤엔 이름이 거론된 현직 검사들의 대법관 도전 의사나 가능성 여부를 점검했습니다. 더불어 “합의 ①실력 ②신망 ③대법원장 추천 모습. 정병두” 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정병두입니다. 법무부 소속 기관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시절 대법관 후보로 추천을 받은 인물입니다. 2014년 1월16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차한성 대법관 후임 후보로 검찰 출신인 정병두 연구위원을 비롯해 사공영진 청주지법원장·조희대 대구지법원장·최성준 춘천지법원장·권순일 법원행정처 차장을 추천합니다. 2013년 12월 법무부는 정병두 당시 인천지방검찰청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내는데요. 대법관 인사에서 그를 후보로 밀기 위한 포석이라는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그는 2009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 재임 시절 용산 철거민 참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우려를 보도한 PD수첩 수사 등을 지휘하며 편파·과잉수사 논란을 빚었지요. 대법관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라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제청한 사람은 조희대 대구지법원장이었습니다. 정 연구위원이 제청을 받지 못함으로써 2012년 7월 퇴임한 안대희 대법관을 마지막으로 끊긴 검찰 출신 대법관의 맥은 또 다시 이어지지 못한 겁니다. 2012년 6월 양 대법원장은 안대희 대법관 등 4명 후임으로 김병화 당시 인천지방검찰청장을 비롯한 4명의 후보자를 제청했는데요. 김병화 후보자는 저축은행 브로커와의 유착 등 의혹들이 무더기로 터져나오면서 ‘최악의 대법관 후보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스스로 물러납니다. 김 전 수석 업무일지에 적힌 “이번이 아니면 난망”이라는 말에는, 검찰 몫 대법관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법무부·검찰의 위기감이 담겨 있습니다.
■ 행정부 고위직으로 이직한 고위 법관
2014년 1월 정병두 연구위원과 함께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5명 중에는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인물도 있습니다. 바로 최성준 춘천지방법원장(현 방송통신위원장)인데요. 2013년 말~2014년 초 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사찰 문건에 최 위원장의 행적이 포함돼 있습니다. “관용차 사적 사용 등 부적절한 처신, 대법관 후보 추천을 앞두고 언론에 대놓고 지원 요청” “양 대법원장이 9월 대법관 인선시 자신을 재차 배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 등 ‘민감한’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최 위원장은 문건 내용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두 달 전까지 대법관 물망에 올랐던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합니다.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관련 경험이 전무한 현직 판사를 사상 처음으로 ‘깜짝 발탁’한 겁니다. 고위 법관이 삼권분립을 훌쩍 뛰어넘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고위직으로 곧바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두고 사법부 독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대법관 자리도 한정된 데다 변호사 시장이 레드오션이 된 현실에서 행정부로 이직을 원하는 법관은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현직 법관이 행정부로 이동하는 흐름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난 2008년 김황식 대법관은 6년 임기 절반도 마치지 않은 채 감사원장으로 ‘전직’ 합니다. 당시 법원 내부통신망에선 “삼권분립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대립 관계에 있어야 할 사법부와 행정부가 상호 인사교류를 하면서 융합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 청와대가 물색한 박상옥 대법관 취임
다시,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2014년 9월 임기가 끝난 양창수 대법관 후임은 권순일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결정됩니다. 2015년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신영철 대법관 후임 후보로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현 대법관), 강민구 창원지방법원장, 한위수 변호사를 대법원장에게 추천합니다. 2014년 12월10일치 김 전 수석 업무일지엔 6월에 이어 박 원장 이름이 한 차례 더 등장하는데요. 12월10일 ‘바른사회시민회의’와 ‘행복한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헌재, 왜 통진당 해산결정을 내려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김 전 수석은 이 토론회를 메모해 두면서 ‘박상옥 원장’도 함께 적어놓았습니다. 박 원장은 이날 발제자나 토론자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가 원장으로 있던 형사정책연구원 윤아무개 박사가 토론회에 참여해 통진당 해산결정을 주장했습니다.
검사 출신인 박상옥 원장은 대법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 일원으로 경찰의 사건 은폐·축소를 방조했다는 논란을 빚었습니다. 2015년 5월 야당의 반발에도 새누리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안을 단독 처리하지요.
박상옥 원장은 어떻게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된 걸까요? ‘비법’은 폐쇄적인 대법관 인선 과정에 있습니다. 헌법에 따라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를 통해 대법관 후보를 선정하게 돼 있습니다.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전임 대법관·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아닌 법관 등 현직 법관 3명, 법무부장관·대한변호사협회장·한국법학교수회장·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4명, 대법원장이 위촉하는 변호사 자격이 없는 3명 등 총 10명으로 구성됩니다. 위원 10명 중 6명을 ‘내 사람’으로 둘 수 있는 대법원장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이지요. 회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전·현직 법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 대통령 의중과 국회 분위기를 두루 살핀다고 합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인물을 대통령이 거부하면 ‘모양새’ 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박상옥 원장을 제청한 건, 청와대 뜻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읽힙니다. 양 대법원장은 2014년부터 ‘상고법원(대법원이 맡아온 상고심 사건 대부분을 전담하는 법원)’ 신설에 총력을 기울였는데요. 이런 사정이 대법관 인사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많았습니다. 김 전 수석 업무일지에도 사법부 길들이기 방법 중 하나로 상고법원이 등장했고요.
■ 사법부로 간 공안검사들
김기춘 전 실장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내리기 이틀 전에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12월17일 업무일지에는 ‘정당해산 확정’이란 메모가 적혀 있습니다.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를 놓고 헌재 재판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헌재가 부적절하게 접촉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헌재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외부와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전 실장을 비롯해 황교안 국무총리 등 공안검사 출신을 대거 기용합니다. 2013년 박 대통령으로부터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받은 박한철 소장은 2008~2009년 대검 공안부장이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낸 안창호 헌법재판관 역시 공안검사 출신입니다. 안 재판관은 취임 4개월 만인 2013년 1월 검찰총장 인사검증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입길에 올랐습니다. 최고 헌법 해석기관 재판관이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법무부 장관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 자리를 기웃거린 셈이니까요.
검찰 출신 대법관은 박정희 정권 시절 사법부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사법부 내부 사정을 알기 위해 ‘말이 통하는’ 창구가 필요했던 겁니다. 5·16쿠데타 이후 1964년 주운화 당시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첫 검찰 출신 대법관이 됐지요. 전두환 정권 때는 검찰 몫 대법관이 두 자리로 늘었다 1988년부터 한 자리로 줄었습니다. 현행법상 검찰 출신 법조인도 대법관이 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명분으로 검찰 몫 대법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권이 밀폐된 공간에서 누구를 대법관으로 내세울지 미리 논의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는 과정도 비밀에 부쳐지는 현실에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 ‘국정원 대선개입 1심’ 비판 판사 중징계
김동진 부장판사가 어떤 ‘비위’를 저질렀기에 청와대가 나서 ‘직무배제’가 필요하다고 했을까요? 그는 박근혜 정권의 절차적 정통성에 흠집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걸린 재판 결과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2014년 9월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국정원이 정부와 여당 정치인을 찬양하고, 야당 정치인을 비방하며 정치에 불법적으로 관여했지만(국정원법 위반 유죄), 특정 후보의 당선을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선 개입은 아니다(공직선거법 위반 무죄)’라고 판결합니다. 선고 다음날인 9월12일 당시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올립니다.
국정원법 위반죄가 유죄임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으니, 실질적인 처벌은 없는 셈이다. 이 판결은 ‘정의(正意)’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이 가득한 판결일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제 있었던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 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 전 수석 업무일지가 공개되면서 김 부장판사 징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12월9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업무일지에서 김동진 부장을 언급한 날짜인) 2014년 9월22일 이전인 9월17일 소속 법원장이 해당 법관에 대한 징계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결정과 수위는 외부의 개입 없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청와대가 ‘직무배제’를 언급한 것은 단순히 징계를 요구하는 차원이 아닌 수위를 정해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법관의 징계는 독립성 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헌법 106조 1항에 따라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습니다. 법관 징계처분으로는 정직·감봉·견책이 있는데, 직무배제를 할 수 있는 징계는 정직 뿐입니다. 김 부장판사가 비판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1심 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2015년 2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합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아직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5년 2월9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 뿐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죄까지 인정해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합니다. 그러다 같은 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냅니다. 대법원은 유무죄 판단하지 않은 채,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전자문서 2건을 ‘업무상 문서’로 볼 수 없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인데요. 현재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시철)에서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심리를 하고 있습니다.
■ 이름 적힌 판사, 보수단체·새누리도 압박
박근혜 정권이 가장 민감하게 대응했던 사건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세월호 참사일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4개월 만인 2014년 8월22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새만금방조제 배수갑문 안쪽 바다에서 전어를 잡던 태양호가 배수갑문 개방으로 인한 물살에 휠쓸려 전복됩니다. 선장 등 3명은 구조됐지만 실종된 선원 3명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사고와 관련해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태양호 선장 김아무개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요. 2014년 8월27일 광주지법 군산지원 이형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를 기각합니다.
그해 10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광주고법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새누리당 이한성·김진태 의원이 이 부장판사의 영장기각을 거세게 비난합니다. 이한성 의원은 “국가가 그렇게 죄악 같으면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 먹고 혼자 살든지, 왜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법질서를 마구 흩뜨리고 합니까? 법원이 이런 분위기로 계속 가다가는 국민 신뢰가 땅에 떨어집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청와대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에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법원 영장-당직판사 가려 청구토록” 이라는 말까지 있지요. 평일에는 법원마다 2~3명씩 영장만 전담하는 판사가 있지만, 주말에는 당직 판사가 돌아가면서 영장을 검토합니다.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는 걸 막기 위해 판사들의 성향도 파악한 겁니다. 사건이 불거지고 법원에서 유·무죄가 결정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당장 피의자가 ‘구속’되는 모습이 나와야, 검찰이 뭔가 불법적인 일을 엄단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2014년 6월30일 업무일지에는 박관근 부장판사가 등장합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까닭에 ‘찍힌’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9월 박 부장판사가 재판장이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는 1995년 정부 허가없이 무단 방북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아무개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합니다.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김일성 시신을 참배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에 대해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을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에 비춰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평소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참배 행위를 망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소극적으로 참배한 행위만으로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했다거나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속단하기 주저된다”고 했습니다. 청와대가 눈 여겨 본 박 부장판사도 이형주 부장판사처럼 보수단체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는데요. 2014년 10월1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박 부장판사 사퇴를 촉구합니다.
■ 스스로 불신 자초한 사법부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12월9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 일부 문구에 기초해 ‘법원 길들이기’가 이루어졌다거나, 법원이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취지의 의혹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러한 의혹들은 모두 억측에 불과하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거나 법관의 자긍심을 해할 만한 어떠한 일도 없었음을 말씀드린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현직 법관들 중에도 이런 해명을 수긍할 수 없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법원장들은 대법관 제청권을 지닌 대법원장 눈치를, 법관은 근무평정권을 지닌 법원장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인사·행정권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돼 있으므로 정권이나 외부에서 대법원장을 움직일 수 있다면 사법부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여전합니다. 인사권자인 법원장이 자신의 뜻에 따를 것 같은 판사들을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중요한 사건을 다루는 형사합의부·형사단독부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법원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판결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판사들 말을 종합해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발령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후보군에 포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배당받게 되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찾아든다고 합니다.
김 전 수석 업무일지에서 본 것처럼 박근혜 정권은 유신헌법마저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합니다. 1973년 1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유신시대를 지탱해 준 건 긴급조치였는데요. 이러한 조치에 따라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개정·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영장 없이 체포·구속해 군 재판에 넘겼습니다. 구속기간에 제한도 없었습니다. 1974년 한 농민은 “박정희가 여순반란 때 부두목으로 가담했는데 운이 좋아 대통령까지 됐다”는 말을 했다가 징역 12년을 선고받기도 했지요.
대법원은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2013년 5월 긴급조치 4호·2013년 4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혹은 무효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2015년 3월26일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을 이유로 영장 없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20일간 구금 당한 최아무개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패소 취지로 깨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냅니다.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현직 대통령 아버지의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정도의 불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래가 아닌 과거로 향하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과 냉소가 이어지는 사이, 국회는 여소야대가 됐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국면을 맞았습니다. 앞으로 사법부는 어떤 길을 갈까요? 우리 사회에서 삼권분립은 실현 가능할까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3@hani.co.kr
*참고 문헌
<기울어진 저울-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이춘재, 김남일·2013)
<사법부>(한홍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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