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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김상조, 강경화를 떨쳐내려 하는가

장백산-1 2017. 6. 7. 17:23

미디어오늘

누가 왜 김상조, 강경화를 떨쳐내려 하는가

전지윤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 실행위원 입력 2017.06.07. 13:44


[기고] 진보적이고 흠이 없는 후보 찾기보다 중요한 건 맥락과 구도

[미디어오늘  전지윤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실행위원]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 문제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김상조, 강경화가 떠올랐다. 이들은 기층에서 사회운동에만 투신해 온 사람들이 아니며 기성사회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어느 정도 흠도 생긴 사람들이다.

나름 개혁, 진보적 입장도 있지만, 급진좌파적 잣대에서 평가하자면 부족할 수밖에 없고 비판할 부분도 많다. 따라서 그런 입장에서는 나서서 지지하거나 옹호할 이유가 별로 크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지금 조중동과 재벌, 기득권 관료들이 총공세에 나서면서 이들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최경환, 홍문종 같은 ‘똥묻은 *'들이 나서서 '겨'를 따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억 부동산 투기를 위해 위장전입했던 자들이 학교배정을 위한 위장전입을 탓하고, 수십억 비리와 특혜에 연루된 자들이 계약직 영어 교사 채용 ‘특혜’를 따지고 있다.

가장 불공정하고 부패한 세력이 상대적으로 덜 불공정하고 부패한 사람을 흔들어서 떨어트리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워낙 언론들이 앞다퉈 ‘단독’이라며 계속 보도를 쏟아낸 통에 두 사람은 이미 뭔가 엄청나고 많은 흠이 있는 후보로 이미 대중적으로 프레이밍이 됐다. 막상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보면 그 잘못과 흠들이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에 애매한 점이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부패우파와 기득권 세력이 별로 싫지 않던 인물들(이낙연, 서훈 등)은 통과시켜 준 대신 두 사람은 떨어내자는 ‘빅딜설’까지 야당 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특히 강경화 흔들기는 ‘외교’라는, 이 냉전국가의 핵심 중대 요직을 외무고시 출신으로 북미대사 등을 거친 주류 남성 엘리트가 아닌 비주류에 페미니스트 여성에게 결코 내줄 수 없다는 가부장적 사회의 반격이란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사진=이치열 기자
강경화가 아닌 그런 남성 후보였다면 이 정도의 의혹과 폭로들이 쏟아졌을지, 그리고 그것이 그토록 결정적 결격 사유가 됐을지 상상해 보라. 지금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얼마나 충분히 진보적이고 흠이 없는 사람들이냐가 아니라는 맥락과 구도다.

어디로부터, 누구의, 무엇을 위한 공격인가를 보자. 그럴 때 한편에는 재벌, 조중동, 자유당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시민사회진영과 여성운동가들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는 홍석현 같은 남자가 적임이란 자들이 있고, 강경화에 기대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이 ‘달리는 기차 위’에서 ‘중립’이거나 심지어 두 사람을 '까는 데' 집중하는 건 안 맞다고 본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부패우파 과두세력이 노동자당 호세프를 탄핵할 때를 돌아보자. 호세프는 실제로 부패했고 신자유주의에 타협했지만, 브라질 극좌파는 ‘의회쿠데타’에 맞서는 것을 우선했다. 아무리 좌파적 근거로 두 사람을 반대해도 지금 상황의 주된 성격이 바뀌진 않는다. 한편에서 ‘민중탄핵’을 말하는 좌파도 작게나마 있었다는 게 2004년 노무현 탄핵의 우파적 본질을 바꾸지 않듯이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상층인사 누구도 자유롭지 않는 부패의 고리’를 폭로하는 데 강조점을 두거나, 어떤 흠과 타협적 노선도 거부하는 좌파적 선명함을 과시하는 게 핵심인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일반적 선전과 구체적 폭로는 항상 필요하지만, 더 효과적 사례와 연결시킬 필요가 있고, 그것을 원칙으로 입장을 정하자면 좌파가 자본주의 정부의 인사 중에서 반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좌파적 원칙이 있어야지만, 동시에 구체적 상황에서 전술도 필요하다. 두 사람의 흠을 덮어주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자는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의 흠은 그것대로 꼼꼼이 따질 수 있고 변명해 줄 필요는 없다.

법인세 인상에 대한 김상조의 모호한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고, 인권을 빌미로 제국주의적 압박이 정당화돼 왔다는 점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강경화의 입장도 위험해 보인다.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완벽한 적임자인양 추켜세우기보다는 이러한 견해 차이와 정치적 비판은 숨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진보적 사회변화는 뛰어나고 똑똑한 장관들의 선물일 수 없고 우리가 얼마나 연대하고 투쟁하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부패우파의 주도로 두 사람이 밀려나고 기득권층이 받아들일만한 인물들로 바뀌는 게 그런 연대와 투쟁 건설을 위한 더 좋은 운동장을 마련해줄까? 그런 닳고닳은 인물들이 우리가 맞서 싸우기 더 좋은 적수일까?

결국, 부패우파가 두 사람에게 표적을 맞추는 작전상 이유가 있듯이, 진보좌파에게도 작전상의 판단과 집중점이 필요하다. 두 사람을 공격하는데 힘을 보태기 보다는 노조파괴 공범 박형철, 공안검사 출신 이인걸, 여혐도서 저자 탁현민 등 새정부의 오른쪽으로 삐져나온 가지를 치는 데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보인다.

기득권 주류 세력은 이 세 사람에 대해선 별 거부감이 없고 흠을 파헤칠 필요도 의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뜨거운 이슈가 돼야 하고, 그 흠들이 낱낱이 벗겨져야 할 세 사람은 김상조와 강경화 뒤에서 가려져 있다. 진보좌파는 이 세 사람을 뜨거운 감자로 만들고 여론의 주목과 반대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