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뿌리
[아쉬타바크라 기타 강설] 16-7
“분별력 없는 상태인 욕망이 있는 한, 대상(경계)에 대한 끌림과 거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윤회의 뿌리이자 가지이다.”
【강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불확실한 선입견, 기존의 고정관념으로
사실을 왜곡시켜 해석하는 사량분별심이 분별력이 없는 상태, 곧 무지(無知)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무지는 바로 ‘나’라고 여기는 존재가 하나의 몸과 마음으로서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나'로 존재한다는 허망하고 잘못된 생각, 즉 착각(錯覺)입니다.
'나'에 대한 그 무지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 모든 고통,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하나의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객관적으로 독립된 몸과 마음으로서의 ‘나’는 이 세상
전체와 분리되어 있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 전체의 부분 가운데 하나인 그런 ‘나’는 항상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며, 불만족스럽게 여겨집니다. 또한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딪치고,
상처받고, 끝내 스스로 죽음을 끝으로 소멸될 것이란 공포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제한되고 규정된 유한한 그런 ‘나’는 자신의 불완전, 불충분, 불만족,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또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대상들을 욕망해서 가까이 하려거나 멀리 회피합니다. 어떤
대상엔 강하게 끌어당겨 집착하고, 어떤 대상은 강하게 회피하여 거부합니다. 그러나 끌어당기고
거부하는 그 행위, 그 힘, 그런 인력과 척력은 대상과 방향만 다를 뿐, 동일한 에너지의 파동입니다.
그러나 분별력이 없으면, 즉 무지의 상태, 욕망에 휩쓸린 상태, 나를 하나의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몸과 마음으로 동일시하는 상태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좋아해서 끌어당기는 대상을 얻으면 행복하겠지만, 얻지 못하면 불행하고, 싫어해서 밀어내는
대상을 회피하면 행복하겠지만, 회피하지 못하면 불행해집니다.
나와 상대가 되는 대상은 끝없이 바뀌지만 내가 하는 행위는 결국 어떤 대상을 좋아서 끌어당기거나
싫어서 밀어내거나 하는 둘 중의 하나의 행위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행복과 불행은 끊임없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이것을 윤회라는 이름으로 말하는 겁입니다. 결국 윤회의 밑바탕, 그 뿌리는 고정
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하나의 몸과 마음인 ‘나’가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무지
입,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나’가 우주전체와 분리되어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하나의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밀고 당기는 힘(척력 인력)도 없고, 그 결과로서 행복하고 불행할 일도 없고, 나아가
탄생도 죽음도 없고, 따라서 윤회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를 어떤 선입견, 고정관념
에 의지하지 말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답변도 모두 허망하고 헛된 생각, 망상 또 다른 선입견, 고정관념의 결과
일 뿐입니다.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말고 그저 질문만 계속 하십시오. 순수하고 간절하게 질문하십시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나?
이같은 질문 배후에 남아있는 침묵 공적(空寂)함 속에 가만히 머무십시오.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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