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 법륜 스님
사람들은 흔히들 '나에게 자유를 달라' 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 자유는 무엇일까?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가?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을 가게 된 경우 학생들 대부분은 좋아하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저는 극장
안 갈래요' 라고 싫어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선생님은 단체로 가는 거니까 빠지면 안
된다고 하고, 그 학생은 '나에게는 극장에 가지 않을 자유가 있다' 고 항변한다.
그런데 이 학생이 시험을 하루 앞두고 공부하다가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엄마에게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한다. 엄마가 영화 보러 가는 걸 허락하지 않자 학생은 엄마를 조르다가 '나에게도 영화를 볼
자유가 있다' 고 항변한다.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에는 '영화 보지 않을 자유가 있다' 하고, 시험을 코앞에 두고 영화를
못보게 하면 나에게 '영화 볼 자유가 있다' 고 하는 이 학생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내가 영화를 보기 싫을 때에는 보지 않는 게 자유고, 영화를 보고 싶을 때에는 보는 게 자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뿌리에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자유다' 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한 그런 생각은 반쪽의 자유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담배를 피울 자유도 있고 담배 피우지 않을 자유도 있다. 회의를 할 때는 담배 피울
자유를 빼앗긴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지 않을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의 도중에
'담배를 피워야 한다' 라고 고집하면, 그런 고집은 담배 피우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담배 안 피워' 라고 고집하면, 담배를 피워야 할 필연적인 상황이 되면 담배 피우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걸림이 없는 자유스러움이어야 한다.
담배 피울 조건에서는 담배 피울 자유를, 못 피울 조건에서는 피우지 않을 자유를 다 누리는
생각 마음이 참자유다. 여기에 도달해야 무애(無碍, 아무것도 걸림이 없는 자유인)이 된다.
이 세상만사에서 無碍(무애)의 의식 수준이 되면 바다에 빠질 자유와 빠지지 않을 자유를 동시에
누리게 된다. 파도가 쳐서 바다에 빠지면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주울 자유를 누리는 거고, 빠지지
않으면 그냥 배를 타고 유유자적 뱃놀이를 누릴 자유를 누리면 되느 것이다. 어느 것에도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구속당하지 않는 걸림 없는 확~터진 자유란 이러한 자유를 말한다. 이런 자유가
바로 진정한 나, 본래의 나, 부처, 깨달음, 하느님, 삼신할머니, 신, 진심, 본래마음, 본성, 도, 선,
진리, 법, 본래의 나, 진심, 본심, 등등의 명칭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내 생각 마음이 바라는 대로 세상만사가 그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마음 생각이 있는 한은 걸림 없는 대자유의 삶, 세상 인생을 누리지 즐기지 못한다.
『반야심경』에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라는 글귀가 나온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터득해서 분명하게 알아, 얻으려는 마음을 놓아버린 사람은
완전한 대자유인, 해탈인, 열반에 든 사람이다.
-〈깨달음〉중에서-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 생전에 즐겁게 살아요 (0) | 2017.07.06 |
---|---|
모든 형상들은 마음으로 돌아간다(會相歸心) (0) | 2017.07.06 |
사람들 모두 석가와 다르지 않다. (0) | 2017.07.05 |
윤회의 뿌리 (0) | 2017.07.05 |
인연 따라 잠시 왔다 가는 존재 (0) | 2017.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