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으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정토(淨土) / 법상스님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산과 풀과 나무를 볼 때 그저 평범한 산과 풀과 나무 나부랭이로 보겠지만,
깨달은 사람의 시선으로, 아니 깨달은 사람까지 갈 것도 없이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산과 풀과 나무를
바라보면, 저 평범한 산과 풀과 나무 한 그루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신비하고 놀라운 장엄함이다.
필자 또한 20대의 어느 날 봄 우연히 제비꽃 한 송이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신비롭고 놀라운
장엄함과 경이로움을 느낀 뒤로는 그토록 평범하던 이 세상의 자연 하나 하나가 이토록
경이롭고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라는 사실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詩人들은 그토록 평범한 꽃 한 송이나 자연을 그토록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그렇다. 마음이 활짝 열려 있지 않은 사람, 무명과 분별심에 휩싸인 사람에게는 이 세상은
속세의 더러운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예토(穢土, 더럽고 지저분한 세상)에 불과하겠지만,
무명, 어리석음과 분별심을 여의게 되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미 있었던 장엄한 정토
(불국토,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곧장 드러나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정토는 어디 다른 곳 저 멀리 저 쪽 10만억 불국토를 지나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理想鄕이 아니다.
동서남북 상하 동남 남서 서북 북동 시방(十方) 어디에든 어느 때든 무량한 부처님(無量佛)과 무량한
정토(無量光)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무량불 무량광 그곳 세상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경전은 언제나 경전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전이 진정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는 본래의 뜻, 낙처(落處), 당처(當處), 귀결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토신앙(淨土信仰, 깨끗한 세상을 믿음)이야말로 정토신앙의 낙처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후기에 많은 조사스님들께서 정토신앙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의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정토신앙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불함으로써 극락세계(淨土, 佛國土)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라는
가르침은 무슨 의미일까?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즉 무한한 목숨과 무한한 광명,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참다운 모든 존재의 근본성품(본성)인 근원의 아미타불이 내 안에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 안에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드러나 있는 근본성품, 아미타불을 어떻게 깨닫는가?
아미타불 명호를 계속 외우라 염불하라. 즉 아미타부처님을,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서리치게 그리워하고, 계속해서 외울 정도로 아미타부처님을 마음속에 품으라는 것이다.
아미타부처님 명호,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을 잊지않고 절절하게 그리워
함으로써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극락세계(淨土, 佛國土)가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곧바로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이 사실을 깨달음 그것이 극락왕생(極樂往生)하는 것이다. 극락세상(정토, 불국토)는 죽은 뒤에
가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극락세상(정토, 불국토)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때 곧바로 극락왕생하는 것이다.
아미타부처님을 품고, 아미타부처님 명호를 염불하고,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면서
극락세계(정토, 불국토)라는 아미타불 세상(정토, 불국토, 극락)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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