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할 일 없는 한가한 도인

장백산-1 2017. 9. 21. 15:57
證道歌2 絶學無爲閑道人(절학무위한도인)  증도가 / 대승경전 

2015.10.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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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것을 다 마쳤다(絶學)'함은 계(戒), 정(定),혜(慧) 삼학의 수행을 다 마쳐 다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배울 것이 더 남아있고 공부할 것이 있다면 이것은 '배움을 다 마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배울 것이 다 마쳐서 다시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는 경지가 究竟覺(궁극의 깨달음)

인 것입니다.


그래서 <증도가>의 '증(證)'은 구경각(究竟覺)을 의미하며 구경각으로 자성(自性 : 모든 존재의 근원인

근본성품)을 깨쳐서 실제로 자성을 체달한 것을 말합니다. '할 일이 없다(無爲)'함은 진여(眞如)를 말하는

것이니 진여(眞如)를 올바르게 깨친 것을 가리킵니다. 배울 것이 더 이상 하나도 없고 할 일이 없게 되면 

자연히 '한가한 도인(閑道人)'이 되는 것입니다.

 

선종(禪宗)에서 깨쳤다고 하는 말은 누구든지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닦아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고 더 

나아갈 수 없어 '배우는 것을 다 마쳐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절학무위한도인 이 구절은 증도(證道)한 사람을 표현한 말로서, 선종에서 '깨쳤다'고 하는 

그 '깨침(悟)'의 내용이 구경각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한가한 도인(증도한 사람, 閑道人)은 무엇을 하느냐? 

'망상도 없애려 하지 않고 참됨도 구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 것(부제망상불구진)'입니다.


흔히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해 보아서, '모든 망상을 없앨 것도 없고 참됨을 구할 것도 없다. 망상이 

일어나도 망상 그대로가 참됨이며 참됨과 망상이 본래 완전히 통해 있기 때문에 망상 이대로가 

참됨이며, 망상을 내려놓고 달리 참됨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잘못 해석합니다.


그렇게 해석해 보면 앞 구절의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과는 근본적으로 반대가 됩니다.

'절학무위한도인'은 일체망념을 완전히 쉬어서 구경각을 성취한 사람인데, 거기에는 이분법적

상대적인 법인 참됨과 망상이라는 분별이 있을 수 없읍니다.

 

<증도가> 가운데서 영가스님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읍니다.

'참됨도 서지 못하고 망도 본래 공하다(眞不立妄本空)

참됨도 설래야 설수 없고 망상(妄想) 분별 번뇌도 본래 空하여 참도 망상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는 

참됨과 망상이라는 분별이 완전히 끊어진데서 하는 말입니다. 망상 이대로가 참됨이기 때문에 끊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절학무위한도인'을 모르고 하는 말이고 영가스님의 뜻을 거꾸로 보는 것

입니다.


분별 망상 번뇌가 다 끊어졌으니 분별 망상 번뇌를 없앨려고 하여도 없앨 분별 망상 번뇌가 없고 또한

참됨도 설수 없는 자리라면 참됨을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가 있겠읍니까? 부제망상불구진이라는 말은 

참됨과 망상이라는 분별을 찾아 볼 수 없는 경지에서 하는 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참됨과 망상은 분별하는 이원성의 상대적인 법이며 양변, 변견이기 때문에 생과 사라는 분별하는 견해

이며 따라서 생겨냤다 사라져버리는 현상, 즉 생멸법입니다. 분별인 참됨과 망상의 양변이 완전히 끊어

져야만 이것이 중도(中道)입니다.


'절학무위한도인'은 중도를 올바로 깨친 사람이며,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은 분별인 참됨과 

망상의 양변을 둘 다 버린 것을 말하니 그것이 곧 중도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증도가>를 이해하는 

첫 출발로서의 근본자세가 바로 섰다고 보겠읍니다.

▶ 서암 스님


배움이 끊어지고 할 게 없는, 모두가 눈만 뜨면 바빠서 하루 종일 헤매는 게 중생인데 다시 배울 건더기가 

없이 달관해서 할 게 없는 한가한 도인은 더 이상 어지러운 망상을 없애려고도 하지 않고 참된 진리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모두 그런 한가한 도인이라 생각하고 이 법문을 설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