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증언으로 본 5·18 "평화로운 광주, 계엄군이 짓밟아"
입력 2017.10.11. 13:23 수정 2017.10.11. 13:51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 직전인 1980년 5월 16일은 경찰의 보호 아래 광주 도심에서 평화적 거리시위가 있었다. 다음날에는 대부분 시위진압경찰도 휴식과 야유회를 하는 등 평상시와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광주·전남 시도지방 경찰청의 전신인 옛 전남경찰국 기록에 담긴 1980년 5월 당시 광주 치안 상황은 정예 특전부대를 투입해야 할 만큼 혼란스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대학생 주도로 100∼500명씩 참가하던 시위에 고등학생과 시민 등 군중이 합세할 때도 있었지만,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이 시기 전국 다른 도시에서도 집회는 비슷한 규모로 잇따라 열렸다.
당시 경찰 기동대원은 "시위가 끝나면 대학생과 경찰이 서로 '고생했다'며 음료수를 나눠 먹기도 했고, 최루탄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경비계에서 근무했던 경찰관은 "16일까지만 해도 횃불 행진 등 평화시위를 마친 학생들이 '경찰들 고생하셨다'며 즉석에서 모은 돈 10만원을 위로금으로 주고 가기도 했다"고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광주 상황은 5월 17일 자정을 전후해 7공수여단을 시작으로 계엄군이 배치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남경찰국에 몸담았던 경찰관들은 당시 계엄군 작전에 대해 '미리 정해둔 시위대를 끝까지 추적해 구타 후 연행' '착검한 M-16소총을 가로로 메고 1m가량 목봉으로 무차별 가격' '사람을 실신시켜서 끌고 가' 등 강경일변도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충분히 학생시위를 관리할 수 있었음에도 어떤 이유인지 공수부대가 투입됐다 이들이 시민을 자극해 불행한 사태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증언은 '12·12 및 5·18사건' 검찰 수사 결과와 행정기관 상황일지에 담긴 내용과도 일치한다.
11일 5·18 당시 경찰활동을 담은 첫 공식보고서를 낸 전남지방경찰청은 계엄군이 폭력을 자행하고 과격한 진압을 펼치면서 대학가 시위가 시민항쟁으로 치달았다고 분석했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당시 계엄 확대 조치에 대한 국민저항을 광주시민의 초기 반발을 이용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억누르려 하는 의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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