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生覺)과 관념(觀念), 개념(槪念)으로부터의 해방(解放)- - 진실로 올바른 견해(正見)이란?
정견(正見), 진실로 올바른 견해(正見)이란? 개념(槪念), 관념(觀念)으로 마음공부 하지 말라.
분리 분별하는 생각으로 가르침을 이해(理解)하면 그건 전부 다 허망한 생각, 망상(妄想)일 뿐이다.
참나(眞我)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은 아무런 일체의 분별을 하는 개념(槪念), 관념(觀念),
생각이 없는 것이기에 지식의 대상(對象)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내용물(內容物) 또한 없다. 그러니
참나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이 어찌 앎의 대상, 이해(理解)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여기 이 상태, 지금 여기 현존(現存), 참나=실상(實相)=공상(空相)=현전(現前)=무심(無心)=
무아(無我)=근본성품(根本本性稟)이라는 방편의 말은 다 같은 의미, 동의이어(同意異語)로서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것,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공(空)은 분리 분별할 수 있는 상대성(相對性)이 아닌 결코 분리 분별할 수 없는 절대성(絶對性)의
성질(性質)이기에 "알 수가 없다. 공(空)의 성질(性質)은 결코 몸으로 체험(體驗) 될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성(空性), 즉, 공(空)의 성질(性質)을 체험 하나? "알 수 없음 "으로 체험
(體驗)한다. 생각을 쉼, 즉 분리 분별 비교 시비 판단 해석하는 생각이나 마음이 쉬어지는 이 상태, 바로
지금 여기 현존(現存),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현전(現前) 이, 현, 재, 심, 이게 이 각각이 바로
구원(救援)이자 깨달음(眞理, 禪, 法, 道, 佛, 근본성품, 참나, 하나님, 神)이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이다.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것, 오직 이 세상에는 이것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구원과 깨달음이 따로 따로 분리된 것이 절대 아니다. 생각과 개념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수많은 경전과 책을 읽고 쉼없이 명상을 한다해도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것에 계합(契合), 증득
(證得)하지 못하는 그 이유(理由)는 머리로만 생각 분별 분리 비교 판단 해석하는 분별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잔머리 굴리는 분별심, 머리 굴려 이해하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아는 것과 '하나라
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것을 증득(證得)하고 이것과 계합(契合)하는 것의 차이(差異)는 종이 한 장 차이
에 불과하지만, 실제(實際), 근원(根源)에 있어서는 극(極)과 극(極) 만큼이나 까마득하게 먼 것이다.
이해(理解)와 증득(證得), 계합(契合)의 차이는 마치 "허상에 불과한 영화(影畵), 그림자의 그림들"과
"실물"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해와 증득 계합은 이렇게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것,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것, 이 자리를 증득(證得)하거나, 이 자리에 계합(契合)
하지 못하면 이런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眞理, 禪, 法, 道, 佛, 근본성품, 참나,
하나님, 신(神), 모든 참다운 존재의 진실한 모습, 어떤 모습도 없는 모습을 생각 관념 개념으로 분별
하고 분리하고 헤아리니까 뒤엉켜서 이것을 증득 못하고 이것과 계합을 못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의 진실한 모습, 실상(實相), 공상(空相, 모습이 없는 텅~빈 모습)은 무아이고 무아가
참나이다 참나는 아무 모양도 없는 무상(無相)라고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조합하는
단어들을 자신이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해서 축적했던 경험정보, 기억, 견해, 지식에 근거해서 자신의
생각, 관념, 개념을 기준으로 해서 단어와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 세상과 모든 것을 분리 분별하는 생각 개념 관념으로 이해가 되는 이해는 어디까지나 이해일 뿐
진실이 아니다. 진실(실제, 진리, 禪, 法, 道, 佛, 근본성품, 참나, 하나님, 神)이라는 방편, 도구, 수단의
말들이 가리키는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 하나, 이것을 진실로 아는 것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것, 이 現存, 이 현전(現前)과 하나되는 것, 계합(契合)이고 이것을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계합하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를 증득하는 것은 분리 분별
하는 생각, 말, 머리, 관념, 개념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인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는 이 세상을 분리하고 분별하고 구분하는 것이 주특기인 생각, 말, 머리,
생각, 개념, 관념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것과 계합할 수
있고 이것을 증득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견해, 지식, 알음알이, 생각, 관념, 개념이라는 분리 분별의 감옥, 고정관념으로
부터 벗어나 나라는 것과 이 세상을 아무 분리 분별 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인 자연(自然)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을 일러 바른 견해, 정견(正見)이라 한다.
어떤 것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어떤 견해도 없는 것이 바른 견해(正見)다. 이 세상의 진실한 모습은
어떤 모습도 없는 텅~비어 있는 모습(空相)이기 때문에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거기에는 그 어떤
분리, 분별, 차별, 구분, 구별, 차등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말하길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해서 이 세상 모든 것(존재, 현상, 모양)은 본래
이미 정(正)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니다.
생각, 말, 언어, 글자, 개념, 관념, 고정관념, 견해, 지식, 알음알이로부터 자유로워 진다는 것은 일체의
분리 분별하는 생각 마음, 분별심, 분별의식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이
하나, 이것,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와 하나되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되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現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現前)이 그냥 지금 여기에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 어떤 대상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롭게 생각이나
마음을 내어 쓰면서도 어느 것,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마음 생각이 금강경에서 일깨워
주는 글귀인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입니다.
이 세상, 이 인생, 이 삶은 찰나 찰나, 매 순간 찬란하게 신비롭고, 경이롭고, 자유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감옥, 속박인 분별심, 분별의식에 갇혀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갇혀있고 속박되어 있다는 환상
(幻想) 속 세상을 방황하면서 어떤 구속도 없는 세상에서 다시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허망
하게 헛된 애를 쓰며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가야 할 곳 몰라 방황하고 두려워하는 인간들이여 어디로 가도 이 세상이 다 그대들 집이로다. 몸이 숨
을 멈췄을 때도 죽은 몸은 만들어졌던 그대로 흙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기운으로 돌아가고, 다른 것은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지금 여기 이순간 이 자리, 이것, 그대로이다. 살아있을 때도 이것, 근본
성품은 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죽었을 때도 이것, 근본성품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여여(如如)
할 뿐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 현전으로 그 동안 꿈속 세계에서 깨어나니 오히려 이것이 분명하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나(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고 믿는 착각, 자아의식, 에고의식)"나 생과 사
(生과 死)라는 분별이 있기나 한가.
왜 사람들은 그토록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려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救援)’할 마음,
무시무종으로 영원한 진실생명, 영원한 생명 영생(永生), 하나하고도 할 수 없는 하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것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가.
慧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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