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모든 법(法), 존재의 실상(實相)에는 본래 생과 멸이 없다

장백산-1 2017. 12. 26. 14:07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45. 보살들의 불이법문(不二法門)

모든 법(法), 존재의 실상(實相)에는 본래 생과 멸이 없다


“그때에 유마힐이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보살들은 어떻게 해서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나이까? 각자 좋은 점을 말씀해 주소서.’ 법자재 보살이 말하였다. ‘생(生)하고 멸(滅)함을 분별하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법(法)의 근본성품은 생(生)하고 멸(滅)함이 없으니 이렇게 무생법인(無生法印)을 터득히는 것을 둘 아닌 법문이라 합니다.’  덕정 보살이 말하였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분별하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더러운 것의 근본성품을 보면 깨끗함도 없나니 이를 둘 아닌 법문이라고 합니다.’ 진천보살이 말하기를 명과 무명을 분별하는 것을 둘이라 합니다. 무명의 근본성품이 명(明)이며 명(明)도 취할 수 없는 것이어서 모든 분별(分別)을 여의었나니 이같은 둘이 평등(平等)하여 둘이 없는 것을 일러 둘 아닌 법문(不二法門)이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法)은 인연 따라 생겨났으니 고유한 성품이나 이름 없어

번뇌와 열반의 근본성품은 공성(空性)이니 망령된 마음 따른 분별일 뿐


‘유마경’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종취로 삼는다. 유마힐과 여러 보살들 간의 위 대화는 ‘유마경’의 정점에 해당하는 가르침들이다. 이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거사는 병(病)을 통해 대승(大乘)의 이치를 천명하고 불법(佛法), 궁극적 진리(窮極的眞理)는 온갖 분별하는 마음과 온갖 대립하는 마음이 종식된 해탈 · 열반의 경계, 대자유인의 상태임을 드러냈다. 이제 유마거사는 자신을 문병하기 위해 모여든 보살들에게 각자 불이법문(不二法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간략히 설할 것을 권청한다. 법자재 보살은 이 세상 모든 법(法)이 생(生)하고 멸(滅)한다고 분별을 하지만 모든 法의 근본성품은 생겨나는 법도 없고 멸하는 법도 없으니 이것이 곧 불이법문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이 볼 때 이 세상의 모든 만물, 모든 법(法, 것, 존재, 현상)은 응당 생겨나기도하고 멸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예쁘게 피어난 꽃은 반드시 지며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는다. 생명이 없이 생겨난 돌도 반드시 부서지고 무너져서 멸하여 사라진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생과 멸의 순환의 이치를 겪지 않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보살의 안목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볼 때는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실상은 생과 멸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 만물은 인연 따라 일어난 연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연으로 일어난 존재는 고유한 자기의 모습이나 성품이나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기적인 존재들은 생겨났다고는 하나 진실에 있어서는 생겨났다고 할 수 없다. 제 모습이 없고 제 성품이 없고 제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은 존재를 어찌 생겨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것들을 연(緣)으로 하여 조건(條件)으로 해서 생긴 것은 진실로 생긴 것이 아니며 진실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멸할 것도 없는 것이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이러한 이치를 표현한 말이다. 


덕정 보살은 더러운 것의 근본성품을 보면 깨끗할 것도 없다고 말하였다. 이는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본래 분별심의 결과인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분별은 모두 중생의 분별하는 마음에서 그린 그림자이다. 사람의 마음에서 똥을 보면 똥은 더러운 것으로 분별되어 보인다. 반면 구더기의 마음에서 똥을 보면 똥은 아주 깨끗한 것으로 분별되어 보인다. 같은 똥이라도 바라보는 각 중생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똥의 근본성품은 똥을 보는 각 중생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는 분별 망상 번뇌도 마찬가지이다. 분별 망상 번뇌는 더러운 마음이고 분별 망상 번뇌가 없는 해탈 열반은 깨끗한 마음이다. 이 때문에 분별 망상 번뇌에 물든 자를 중생이라 하고 해탈 열반을 얻은 자를 부처라 한다. 그러나 근본성품의 측면에서 분별 망상 번뇌와 해탈 열반을 보면 분별 망상 번뇌와 해탈 열반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다. 이 분별 망상 번뇌와 해탈 열반 두 가지의 근본성품이 모두 공(空)하여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 분별 망상 번뇌의 근본성품도 공성(空性)이며 해탈 열반의 근본성품도 공성(空性)이라 분별 망상 번뇌가 실로 더러움이 아니며 해탈 열반이 실로 깨끗함이 아니다. 분별 망상 번뇌와 해탈 열반의 근본성품인 공성(空性)을 깨치지 못하면 더러움과 깨끗함이라는 분별이 있으나 공성(空性)의 측면에서는 더러움과 깨끗함 이 둘을 찾을 수 없다.


진천보살은 무명(無明)의 근본성품이 곧 명(明)이지만 명(明) 역시 취할 바가 없다 하였다. 무명이란 중생들이 지닌 근원적 어리석음이다. 소승(小乘)에서는 사성제(四聖諦)와 삼법인(三法印)을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고 대승(大乘)에서는 공성(空性), 즉 불성(佛性)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무명의 정체는 비실유체(非實有體)라 그 성품이 역시 공(空)하여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무명이 실지 성품은 본래 텅~비어서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 그대로가 명이라는 뜻이다. 


무명의 마음을 떠나 명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명의 실체가 없음으로 명을 삼는다. 근본적으로 법의 근본성품인 법성(法性) 안에서는 무명도 취하지 못하고 명도 취하지 못한다. 무명이니 명이니 하는 분별하는 말들은 모두 중생의 망령된 분별하는 마음을 따라 일어난 실체가 없는 분별 망상 번뇌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