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두 이 근본, 본래의 나로 돌아와 의지한다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은 근본인 자기에게로 돌아가 의지합니다. 이 세상을 밝은 눈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본래의 나인 근본성품을 밝혀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으로 녹아든 자들입니다.
본래의 나는 사람들이 지식으로 알고 머리로 이해하는 어떤 대상도 아니고 어떤 존재도 아닙니다.
본래의 나 이것은 무시무종으로 영원히 늘 나와 하나이고, 이 세계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본래의 나는 어떤 말이나 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는 아니지만, 모든 말이 본래의 나가 하는 일이고
모든 상상(想像)이 이 텅~빈 바탕 본래의 나라는 여백에 그려졌다 사라지는 환상(幻想)일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은 본래의 나인 텅~빈 바탕 여기에서 그것들의 존재감을 상실해버리며, 상실
해버린 존재감으로써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 일체가 하나라고도 할 수 없는 하나로 되살아납니다.
텅~빈 바탕 본래의 나, 텅~빈 바탕 진공의식은 바로 지금 움직이는 사물에서 역력하고, 출렁거리는
온갖 생각에서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말도 마지못해 하는 말이어서 텅~빈 바탕 본래의 나를
어떤 것으로 규정(規定)해버리면 이미 텅~빈 바탕 본래의 나가 아닙니다.
말이라는 공기의 진동을 듣고 문득 텅~빈 바탕 본래의 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여기에 통하는
것은 허락하나, 텅~빈 바탕 본래의 나 이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근본성품, 근원의 나, 본래의 나, 텅~빈 바탕자리 진공의식은 결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어떤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이 필요없이 통하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인 채로 이 세상 모든 것의 존재감이 사라지며, 행하는 곳,
말하는 곳, 생각하는 곳, 살아가는 곳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져내리는 곳이 텅~빈 바탕자리, 본래의 나
라는 자리,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現前)입니다.
온갖 경험이 예전과 똑같이 펼쳐지지만 그 온갖 경험은 이미 텅~비어 고요해서 공적(空寂)한 것이고,
아무런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온갖 시끄러운 소리와 온갖 움직임과 온갖 마음이 일어남과 사라짐이
지금 그대로 허공(虛空)과 같습니다.
텅~빈 바탕자리 본래의 나 여기에는 시끄럽다고 말할 자도 없고, 시끄러운 방해를 받을 일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이 근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하나라면 겉으로는 비록 그것들이 서로 따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닌 하나 동체(同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말을 내려놓고 텅~빈 바탕자리 본래의 나를 곧장 보십시오. 생겨났다 소멸하는 정신적 물질적 모든
현상(現象) 따라 그 현상들을 시비하고 따지고 분별을 하는 분별심(分別心)이 일어나지만 그 분별심들이
일어나는 텅~빈 바탕자리, 본래의 나라는 자리에 무엇이 있습니까?
텅~빈 허공(虛空)이 말을 하고 텅~빈 허공(虛空)이 침묵을 합니다. 텅~빈 허공(虛空)이 밥을 먹고 텅~빈
허공(虛空)이 삶을 삽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우주만물이 텅~빈 바탕자리, 본래의 나 하나로 찬란합니다.
허공(虛空)이 허공(虛空)에 떠있는 허공(虛空)에 앉아서 허공(虛空)이라는 우주거울을 봅니다.
- 릴라 -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과 사라는 윤회를 벗어났다 (0) | 2018.02.25 |
---|---|
무아(無我)와 아상(我相) (0) | 2018.02.24 |
무시무종, 불생불멸, 상주불멸인 나 (0) | 2018.02.23 |
금강(金剛)의 두 가지 의미 (0) | 2018.02.23 |
찰나생 찰나멸하는 분별심인 생각, 마움 (0) | 2018.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