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下心), 자신을 낮춰야 맑아진다
나이 어린 시절 불교공부를 하며 이해되지 않는 용어들이 참 많았다. 화광동진(和光同塵)도
그랬다. 화광동진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신 것을 비유로 든 내용이었는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그러던 어느 날 펼쳐 든 노자 도덕경에서 문득 눈에 들어오는
구절, ‘지혜의 빛을 부드럽게 하고[화기광(和其光)] 티끌세상과 함께 한다[동기진(同其塵)]’
는 말이었다. 그땐 그 말이 안개 낀 강 건너 풍경을 보는 듯 흐릿했다.
강원생활을 하던 중에 영명연수(永明延壽)선사의 유심결(唯心訣)을 접하게 되었다.
먼지 하나에 모이나 합하는 것은 아니며[취일진이비합(聚一塵而非合)]
온 세상에 흩어지나 나뉘는 것은 아니다[산중찰이비분(散衆刹而非分)]
빛을 부드럽게 하나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니며[화광이불군(和光而不群)]
티끌과 같은 세상과 함께 하나 세상에 물들지는 않는다[동진이불염(同塵而不染)].
이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촬영한 모래폭풍을 본 일이 있다. 비행기는 절대로 모래폭풍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중생들을 보셨을 때,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그 모래폭풍의 광경과 흡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과감히 모래폭풍 속
으로 들어가셨고, 그 모래폭풍 속에서 당신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모래폭풍을 잠재우셨다.
세상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최초로 하신 것이다.
오늘 날 사람들은 하늘에 뜬 먼지에도 참 많이 힘들어 한다. 물론 그 먼지는 자신이 예전에
일으킨 모래폭풍의 여파에 불과하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애초에 모래바람을 일
으키지 말라고 하셨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하신지 어언 이천오백육십이년이 흘렀다. 그러나 지금 석가모니부처
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석가모니부처님처럼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세상 속으로 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고, 외도(外道, 올바른 길을 가지 않는 사람)처럼 혼자만의 빛을 날카롭게
하여 모래폭풍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참 묘하다. 자신을 낮춰서 티끌세상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맑기만 한데,
정작 모래폭풍 일으킨 사람들은 자기가 그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있으니 말이다.
송강스님 - 서울 개화사 주지 / 견도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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