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도인(道人)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분별 번뇌 망상을 없애지 않고 참마음도 구하지 않는다.
무명의 실제 성품(근본성품)이 곧 불성(진리의 성품)이고
허깨비 같은 텅~빈 몸이 곧 법신(진리의 몸)이로다.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무명실성즉불성 환화공신즉법신
『증도가』
이 글은 증도가의 첫 구절로 영가 스님의 불교에 대한 높은 안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증도가의 모든 내용은 이 첫 구절에 근거를 두고 설해진다. 곧 대전제이다. 역대 조사들이 증도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첫 구절의 파격적인 선언 때문이기도 하다.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전파면서 중국인들, 즉 동양인들의 성향에 맞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종교의 흐름도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경사를 만나면 빨리 흐르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폭포가 된다. 산이나 바위를 만나면 돌아나가고, 깊은 골짜기에서는 그 물도 깊고, 평탄한 곳을 지나면 그 물이 얕고 넓다. 불교도 중국에 들어와서는 중국적인 것으로 변모하였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국적인 불교로 바뀌었다. 물론 일본에 가서는 역시 일본적인 색채가 가미되었고, 티벳에 가서는 또한 티벳의 불교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도인(道人)이라는 말은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서 도교와 만나면서 기존의 비슷한 뜻을 지닌 말 즉, 중국 불교의 관점에서 이상적(理想的)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거의 모든 면에서 중국불교를 수용한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같은 의미로 쓰여, 도인(道人)이란 부처님, 보살, 도를 통한 사람, 견성성불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 불교를 공부해서 결국은 도인이 되자고 하는 데 있다.
도인은 한가(閑暇)해야 한다. 한가한 도인은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중생들을 제도하느라 활발하게 활동하되 활동하지 않는 듯이 활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인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서도 한가한 것이다. 또 도인은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도인은 할 일이 없어야 한다. 역시 아무것도 안하고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인위적인 조작이 없고 흔적이 없어서 열심히 살지만 사는 것 같지 않게 산다. 그래서 도인은 불교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망상 번뇌 분별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마음 참됨을 구하지 않는다. 도인은 망상이니 참마음이니 하는 분별이 이미 마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어지는 파격적인 폭탄선언은 분별 망상 번뇌 무명의 실제 성품이 불성이며 실체가 없는 허망한 육신이 법신이라는 말이다. 그 이전의 도인들도 영가 스님 처럼 쉽게 할 수 없었던 말이다. 진정한 도인의 관점에서는 번뇌나 불성이나 육신이나 법신이나 다른 것이 아니다. 번외의 실제 성품이 불성과 다르고 육신이 법신과 다르다면 도인의 삶은 바빠지고 복잡해진다. 골치 아파진다. 바쁘고 복잡하고 골치가 아프면 그것은 도인이 아니다. 증도가는 도인의 삶을 전제로 하여 불교의 여러 면들을 짚어가면서 특유의 안목으로 분석하며 해설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증도가의 이 첫 구절인 무명의 실제 성품이 불성이고, 허깨비 같이 텅~빈 육신이 법신이라는 사상을 앞세우고 있다. 이 사상은 증도가의 열쇠이며 불교의 열쇠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조사들의 모든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이 열쇠로써 다 해결할 수 있다. 이 사상으로써 해결되지 않는 말은 모두가 방편설이다. 결정적인 말씀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기준 삼아서 반드시 이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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