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장백산-1 2018. 8. 2. 12:57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12연기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두 가지의 요소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심에서 해방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연기의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열두 가지의 요소 하나하나가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간단한 개요를 파악함으로써 연기의 고리를 끊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살펴보겠습니다.


1) 무명(無明)


무명이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어리석음이라는 뜻인데 이는 사물의 본성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모르는 것이 무명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은 모두 무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12연기의 시작은 무명입니다. 연기에서 시원(始原)은 없습니다. 인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내가 언제부터 태어나서 윤회를 시작했는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으며 이것이 연기를 끊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이런 문제를 논외로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무명이 눈을 가려 시원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는 것이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설사 안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 하나가 주는 의미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을 오직 필요한 것을 해결하는 데 모아야 합니다. 모든 괴로움이 모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알면 그만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모르면 욕망으로 움켜쥐고, 알면 욕망을 끊어서 움켜쥐지 않습니다. 수행을 해서 지혜가 나면 그 순간에 무명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기의 순환 고리가 그 순간에 끊어집니다.


무명은 여덟 가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처음 네 가지는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를 모르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 는 것, 괴로움의 소멸을 모르는 것,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출생 이전의 과거 생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죽음 이후의 미래 생을 모르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과거 생과 미래 생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로 연기의 바른 성품인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과거 생과 미래 생을 모르는 것이란 과거 생이 있고 미래 생이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과거 생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과거의 원인으로부터 현재로 왔습니다. 그리고 현재 생으로부터 미래 생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원인으로 미래의 결과로 갑니다. 이것이 출생과 죽음의 진실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어서 과거로부터 오고,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고 단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습니다. 과거의 생 또는 미래의 생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원인과 결과가 상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 생과 미래 생이 단지 원인과 결과로 바뀔 때 비로소 바른 견해가 생깁니다. 이것이 연기에서 얻는 깨달음입니다. 이때 과거 생이 있고 미래 생이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자아가 상속되는 것으로 잘못 알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원인과 결과만 있다고 알면 자아가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연기를 알면 자아가 없고 단지 정신과 물질이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만 있다는 바른 견해가 생깁니다. 처음에 일어난 무명은 일어난 순간에 행을 일으키고 사라집니다. 이것이 무상(無常)입니다.


무명이 존재하면 행이 존재하고, 무명이 일어나면 행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무명이 없으면 행이 없고,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합니다. 이때 무명이 없으면 새로 태어나는 행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2) 행(行)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납니다. 행은 무명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무명과 행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인입니다. 행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무명을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무명과 행 사이에는 원인이라는 분명한 조건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 원인이 연기의 연결고리입니다. 모든 것은 원인이라는 연결고리에 의해 결과가 생깁니다. 12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마다 중간에 모두 원인이라는 촉매가 있어서 다음 요소로 연결됩니다.


처음에 시작된 무명은 원인이라서 연기(緣起)입니다. 그리고 원인에 의해서 생긴 행은 결과라서 연생(緣生)입니다. 그래서 무명은 조건 지어진 법이라서 연기라고 하며, 행은 조건에 따라서 생긴 법이라서 연생이라고 합니다. 12연기의 순환은 조건 지어진 법으로 연기와 연생이 흐르는 과정입니다. 즉,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서 흐릅니다.


인간의 삶이 되풀이되고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이 모두 이러한 연기의 흐름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지만 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살면서 한 행위의 과보로 새로 태어나서 살게 됩니다. 이때 태어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단지 원인이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단지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행(行)은 마음의 형성력, 의도, 현상 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행은 마음에 의해 조건 지어진 행위를 뜻합니다. 행은 행위이지만 마음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라서 마음의 작용에 속합니다. 이때의 행은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이 세 가지를 신구의(身口意)라고 하는데 이것을 업(業)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이란 의도가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도가 없는 행위는 업이 되지 않습니다. 업은 지은대로 받는 특성이 있는데 의도가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업의 결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업이 아니면 과보를 받지 않습니다. 무명을 원인으로 일어난 행은 이미 과거에 형성된 것이라서 업의 형성이라고 합니다.


행이 존재하면 식(識)이 존재하고 행이 일어나면 식이 일어납니다. 행이 없으면 식이 없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합니다. 이때 행이 없으면 새로 태어나는 식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이상의 무명과 행은 연기의 구조에서 과거에 속합니다. 과거의 무명과 행은 불가피한 것이라서 우리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 단지 현재의 반면교사로서의 의미 이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삶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식(識)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납니다. 식은 행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식은 아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태어나는 최초의 마음일 때는 재생연결식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원인으로 현재에 새로 태어날 때의 마음을 재생연결식이라고 합 니다. 재생연결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생기고 그 다음에는 잠재의식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연기에서 식은 아는 마음과 함께 재생연결식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됩니다. 이때의 재생연결식은 환생이 아니고 재생입니다. 환생은 자아가 현생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러나 재생은 자아가 없이 단지 과보를 원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뜻합니다. 환생은 힌두교의 교리고 재생은 불교의 교리입니다.


죽을 때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진 뒤에 즉시 재생연결식이 일어나서 다음 생이 생깁니다. 죽을 때 마지막 마음은 일어나서 사라지고 없지만 그 마음에 담긴 과보가 다음 마음을 일으켜 재생연결식이 일어납니다. 죽을 때 마음의 상태가 선하면 다음 생에 선한 마음을 가진 세계에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죽을 때의 마음이나 재생연결식은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라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먹던 마음대로 마지막 마음을 먹고 그 마음대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처럼 죽을 때의 마음은 다음 생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식이 존재하면 정신과 물질이 존재하고, 식이 일어나면 정신과 물질이 일어납니다. 식이 없으면 정신과 물질이 없고, 식이 소멸하면 정신과 물질이 소멸합니다. 이때 식이 없으면 새로 태어나는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4) 정신과 물질[명색 名色]


식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납니다. 정신과 물질은 식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정신과 물질은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이때의 정신과 물질은 오온에서 색온과 수온과 상온과 행온입니다. 오온에서 식온은 앞서서 이끄는 마음인 식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식온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12연기에서는 식과 정신과 물질을 합쳐서 오온이라고 합니다.


앞서서 이끄는 식에 의해 정신과 물질이 생깁니다. 나쁜 식일 때는 나쁜 세계에 나쁜 식을 가진 몸과 마음으로 태어납니다. 죽을 때의 마음이 잔인한 지옥의 마음이면 지옥에서 태어나는 식이 생기고 즉시 지옥에서 사는 몸과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탄생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평소의 마음이 죽을 때의 마음이 되고 죽을 때의 마음이 재생연결식을 만들고 재생연결식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와 그곳의 몸과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연기의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우연도 없고 오직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기의 법칙만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이 존재하면 육입이 존재하고,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면 육입이 일어납니다. 정신과 물질이 없으면 육입이 없고, 정신과 물질이 소멸하면 육입이 소멸합니다. 이때 정신과 물질이 없으면 육입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5) 육입(六入)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육입이 일어납니다. 육입은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육입은 안, 이, 비, 설, 신, 의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입 니다. 정신과 물질이 있으면 반드시 정보를 받아들이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것은 이 정보로 사는 것입니다. 육입은 여섯 가지 감각장 소를 말하며 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육입이라고 합니다.


육입이 존재하면 접촉이 존재하고, 육입이 일어나면 접촉이 일어납니다. 육입이 없으면 접촉이 없고, 육입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합니다. 이때 육입이 없으면 접촉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6) 접촉(觸)


육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납니다. 접촉은 육입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접촉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에 부딪치는 것을 말합니다. 안, 이, 비, 설, 신, 의가 있으면 반드시 색, 성, 향, 미, 촉, 법과 접촉합니다. 이것을 12처(十二處)라고 합니다. 다시 이것들이 여섯 가지 아는 마음과 접촉해서 18계(十八界)가 생깁니다. 여섯 가지 아는 마음은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 식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이러한 18계의 작용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접촉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여섯 가지 감각대상과 여섯 가지 아는 마음이 부딪친 것입니다. 이상의 18계가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불교의 깨달음의 세계는 정신과 물질을 벗어난 것을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몸과 마음에 의해서 생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몸과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접촉이 존재하면 느낌이 존재하고, 접촉이 일어나면 느낌이 일어납니다. 접촉이 없으면 느낌이 없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합니다. 이때 접촉이 없으면 느낌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7) 느낌[受]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납니다. 느낌은 접촉을 원인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느낌은 감각기관에서 느껴지는 감각입니다. 접촉을 통해서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느낌이 함께 일어납니다. 아는 마음은 항상 느낌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다는 것은 느끼는 것입니다. 느낌이 없는 마음은 없습니다.


느낌의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그중에 세 가지로 구분하면 맨 느낌, 육체적 느낌, 정신적 느낌이 있습니다. 맨 느낌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접촉했을 때 처음 일어난 느낌입니다. 맨 느낌은 아직 좋다거나 싫다는 느낌으로 반응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다음으로 육체적 느낌은 맨 느낌에서 반응한 느낌입니다. 육체적 느낌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이때의 즐거운 느낌은 행복이고, 괴로운 느낌은 불행이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덤덤한 느낌으로 무지에 속합니다.


다시 육체적 느낌에서 반응한 느낌이 정신적 느낌입니다. 정신적 느낌은 정신적으로 즐거운 느낌, 정신적으로 괴로운 느낌, 정신적으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덤덤한 느낌입니다. 느낌은 이렇게 조건에 의해 변하면서 끊임없이 갈애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외에도 세간의 느낌과 출세간의 느낌이 있습니다. 세간의 느낌은 범부의 느낌이고 출세간의 느낌은 성자의 느낌입니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면 즉시 집착을 해서 윤회를 하는 원인을 만듭니다. 그러나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으면 집착을 하지 않아 윤회를 하는 원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팔정도 위빠사나 수행은 바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수행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윤회를 끝내고 열반에 이르는 길입니다. 깨달음은 느낌과 갈애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찰나삼매로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은 느낌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일어난 순간 사라집니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의 느낌을 현재로 가지고 와서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실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허상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나의 느낌이 아니고 단지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라고 알면 괴롭지 않습니다. 느낌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어난 순간 사라지는 것이라고 알면 괴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느낌이 존재하면 갈애가 존재하고, 느낌이 일어나면 갈애가 일어납니다. 느낌이 없으면 갈애가 없고,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합니다. 이때 느낌이 없으면 갈애가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 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이상의 식, 정신과 물질, 육입, 접촉, 느낌은 연기의 구조에서 현재에 속합니다. 이상의 다섯 가지는 모두 오온이지만 여기서는 12연기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이므로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이 아니고 12연기의 오온입니다. 수행자가 연기의 사슬을 끊으려면 이상 다섯 가지의 오온을 알아차려서 미래의 원인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8) 갈애(渴愛)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가 일어납니다. 갈애는 느낌을 원인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갈애는 범부가 목마르게 갈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을 갈애라고 합니다.


갈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입니다. 감각기관 이 감각대상과 부딪쳐서 느낌이 일어날 때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가 생깁니 다. 둘째, 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존재에 대한 갈애는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상견과 결합된 갈애입니다. 셋째, 비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는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단견과 결합된 갈애입니다.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도 비존재에 대한 갈애로 인해 생긴 현상입니다.


갈애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갈애는 좋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욕망은 끝이 없어서 아무리 얻어도 만족할 수 없고, 또 얻지 못해도 만족할 수 없어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오면 일단 미래의 원인을 만드는 단계에 진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의 연기로 넘어가 집착을 합니다.


갈애가 존재하면 집착이 존재하고, 갈애가 일어나면 집착이 일어납니다. 갈애가 없으면 집착이 없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합니다. 이때의 갈애가 없으면 집착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9) 집착(執着, 취 取)


갈애를 원인으로 집착이 일어납니다. 집착은 갈애를 원인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집착은 강하게 움켜쥐는 것입니다. 필요한 만큼의 정도를 넘어서 강력하게 얻으려 하는 것이 집착입니다.


집착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갈애에 의해 일어납니다. 첫째,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일어난 갈애를 집착합니다. 둘째,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집착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모르면 어리석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를 집착합니다. 셋째, 도덕적 의무와 금지된 행위에 대한 집착입니다. 개, 소 등의 동물을 흉내내면 고통이 종식되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넷째, 자아에 대한 집착입니다. 자아나 영혼이 있다고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집착은 꽉 움켜쥐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심하게 집착하는 특성이 있어 잡으면 놓지 않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고기를 구울 때 고기가 석쇠에 달라붙는 것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집착은 강력한 갈애와 잘못된 견해로 인해 나타납니다. 일단 갈애가 생기면 집착을 하고 집착을 하면 업을 생성하는 연기로 회전하여 미래의 원인을 만듭니다.


집착이 존재하면 업의 생성이 존재하고, 집착이 일어나면 업의 생성이 일어납니다. 집착이 없으면 업의 생성이 없고, 집착이 소멸하면 업의 생성이 소멸합니다. 이때 집착이 없으면 업의 생성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에서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10) 업의 생성(業의 生成, 유 有)


집착을 원인으로 업의 생성이 일어납니다. 업의 생성은 집착을 원인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업의 생성은 생각과 말과 몸으로 행위를 일으켜 미래의 태어남을 가져오는 힘입니다.


업의 생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업으로서의 존재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을 원인으로 존재가 생기게 하는 업을 행하면 이것이 업의 생성이 됩니다. 둘째, 재탄생의 존재인 태에 들어가는 순간의 존재를 말합니다.


12연기에서 업은 두 가지가 있는데 무명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행의 업이 있습니다. 이때의 업은 과거의 업입니다. 그래서 행을 이미 형성된 업이라고 합 니다. 그리고 집착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업의 생성이 있습니다. 이때의 업은 현재의 업입니다. 현재에서 미래의 새로운 원인을 만드는 업이기 때문에 업의 생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는 과거의 업과 현재의 업이라는 시간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업은 이미 형성된 것이라서 불가피하지만 현재 새로 행하는 업은 자신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업이라도 형성과 생성의 차이가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좋은 업을 생성하여 좋은 과보를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아예 미래의 원인이 될 업을 생성하지 않습니다.


업의 생성이 존재하면 생이 존재하고, 업의 생성이 일어나면 생이 일어납니다. 업의 생성이 없으면 생이 없고, 업의 생성이 소멸하면 생이 소멸합니다. 이때 업의 생성이 없으면 생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11) 생(生)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생이 일어납니다. 생은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생은 태어남입니다.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미래의 태어남이란 결과가 있는데 이때의 태어남으로 인해 새로운 정신과 물질이 생깁니다. 이것을 발생(發生) 또는 생기(生起)라고 합니다.


12연기에서 태어남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날 때의 태어남입니다. 이때의 식은 현재의 태어남입니다. 그리고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생이 일어날 때의 태어남입니다. 이때의 생은 미래의 태어남입니다.


다시 생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태에 들어가서 생을 받는 태어남입니다. 이때는 어머니의 몸에 하나의 생명이 착상되는 과정입 니다. 그리고 일정한 기간을 거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존재가 됩니다. 이때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생이 존재하면 노사가 존재하고, 생이 일어나면 노사가 일어납니다. 생이 없으면 노사가 없고, 생이 소멸하면 노사가 소멸합니다. 이때 생이 없으면 노사가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12) 노사(老死)


생을 원인으로 노사가 일어납니다. 노사는 생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입니다. 노사는 늙어 죽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생으로 인해 성장하게 되고 늙어서 죽는 법들이 일어납니다. 이로 인해서 슬픔, 비탄, 고통, 근심, 고난이 일어납니다.


노사가 존재하면 다음 생의 식이 존재하고, 노사가 일어나면 다음 생의 식이 일어납니다. 노사가 없으면 다음 생의 식이 없고, 노사가 소멸하면 다음 생의 식이 소멸합니다. 노사는 아직 욕망이 있어서 미래의 태어남의 원인이 되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노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모든 욕망이 불타버려서 미래의 태어남이 없는 죽음입니다. 이것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반열반입니다. 이때의 노사가 없으면 다음 생의 식이 소멸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어 윤회가 끝납니다. 윤회는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어떤 요소에서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것은 조건에 의해 소멸합니다. 이러한 조건의 소멸이 깨달음이며 연기의 출구입니다.


이상 12연기는 무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원인과 결과로 진행됩니다.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노사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연기의 순환이자 윤회입니다.


연기의 열두 가지 요소는 모두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세계관도 정신과 물질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은 오온으로 나누기도 하고, 12처로 나누기도 하고, 18계로 나누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결국 모두 정신과 물질을 세분화한 것입니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위빠사나 수행이 정신과 물질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산빛노을(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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