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7일 (일) 현정선원 정기법회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다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 질문 >
머리로 설법만 듣고 깨달을 수 있을지, 왠지 무언가 몸으로 행함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답변 >
불법공부, 마음공부는 지금 여기 여러분이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하고있는 일거수일투족에
달려있는 거요. 수행이라는 이름 아래 몸과 마음을 달달 볶아서 그 결과로 먼 훗날, 성인의
지혜, 성인의 앞서간 행적을 얻게 되는 그런 게 아니오. 지금 여기서의 여러분의 일거수일
투족 그대로가 진리(眞理)의 나타남이고, 불성(佛性)의 응현(應現)임을 확실히 알아야 하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말이라는 방편으로 설법을 하고 몸짓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도 전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짓이지,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모습으로 드러내 보일 수도 없는 거요.
하물며 깨닫기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말은 전혀 진리에 대한 감도 못 잡고 허공에 대고 헛손질
하겠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소. 무엇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 이미 철저히 유위행(有爲行)으로
이 세상을 분별을 해서 어쩌겠다는 말이요.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진리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오? · · · · · · 진리가 뭔지를 아시오?
그저 공적영지(空寂靈知) 그 영성(靈性)이 스스로 환히 밝게 빛나도록 그냥 내버려두시오.
괜히 ‘나’라는 놈, 아상(我相), 가짜 나가 끼어들어 깨닫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둥 저렇게
한다는 둥 쓸데없이 뽀얗게 먼지 피우지 마시오. 영성은 모습도 없고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소.
아기가 태어날 때에도 그 아기의 근본성품은 아기의 육신과 함께 태어나지도 않고, 늙어 노인이 되어
죽을 때도 근본성품은 그 노인의 육신과 함께 사라지는 법도 없소. 근본성품은 생멸이 없고(불생불멸
不生不滅), 가고 옴도 없고(불거불래 不去不來), 늘고 줄고 하는 법도 없소(부증불감 不增不減). 그게
여러분의 근본성품이요, 그게 ‘참 나’요. 그와 같은 근본성품을 보라는 소리요.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거기 앉고 알아듣고 하는 모든 지각활동을 가능케 하는 그 성품이
바로 ‘참나’, 진리, 깨달음, 부처, 불성, 하느님, 공적영지, 근본성품이요. 지각활동하는 입장에서
보면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게 분명하지만, 근본성품 자리에서 보면 이 세상 일체 만유가 울퉁불퉁
와글와글 하는 이대로인 채로 분별 차별이 있는 채로 그대로 공적(空寂)한 거요. 그래서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라고 하는 거요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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