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수행과 깨달음을 통한 삶의 질 향상

장백산-1 2018. 10. 11. 15:03

수행과 깨달음을 통한 삶의 질 향상 - - 경주(冏宙) 배광식(裵珖植)


2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는데 여전히 추운 날씨이다. 오늘 아침엔 해가 두 번 떠올랐다. 동쪽 하늘 아파트 옥상 위로도 해가 떴고, 카톡에도 해가 떴다.


2년여 전에 양평으로 이사를 갔다. 30여 년간 평생도반과 북한강 또는 남한강 따라 일주일에 한두 번 바람 쐬러 다니다가, 아예 해 뜨는 풍경이 출중한 허름한 집을 하나 마련하였다. 일주일의 절반은 그곳에서 지낸다. 양평에서 첩첩하고 아스라한 산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휴대폰사진기로 담는다. 그리고 함께 영어불교책을 읽는 수요강독회 회원들의 단체 카톡방에 전송한다


그림 솜씨가 훌륭한 한 회원이 그 풍경을 그려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 출품했다. 그 그림 사진을 찍어 방금 개인 카톡으로 보내왔다. 현실(現實)이라는 현상세계과 가상현실(假想現實 Virtual Reality, VR)이라는 가상세계에 두 곳에 해가 뜬 것이다. 가상세계인 카톡에 ‘해 뜨는 그림 사진’을 띄워 놓고 현실의 해 뜨는 모습을 보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의 원시형태가 되겠다.


”보살이 수릉엄삼매를 얻으면 능히 삼천대천세계를 겨자씨 속에 넣어 산과 강 일월성수(日月星宿)를 모두 드러나게 하되 조금도 줄거나 오그라들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보이나니 수릉엄삼매의 불가사의한 세력이 이와 같다.“ 청화큰스님의 은사이신 금타대화상이 지은 ‘수릉엄삼매도결(首楞嚴三昧圖訣)’에 ‘수릉엄’의 뜻을 설명하면서, ‘수릉엄삼매경’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휴대폰 속에 은하를 담을 수 있는 요즈음에는 쉽게 이해되는 감탄스러운 통찰이다.


주변은 온통 4차 산업혁명 이야기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며, 딥런닝(Deep Learning)이 가능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egence, AI), 로봇(Robot) 등을 통해 실제(實際)와 가상(假想)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생명공학기술(BT) 등이 주도하는 산업혁명이 4차산업혁명이다.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가 1차 산업혁명이라면,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2차 산업혁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automated manufacturing system)이 3차 산업혁명이다.


300만년의 구석기시대를 지나 만 년 전에 신석기, 5천 년 전에 청동기, 2500년 전에 철기시대가 시작되었고, 불과 200여 년 전에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이 이제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드는 등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급변시대에는 정신이 세상의 변화속도와 변화량을 감당하지 못해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6바라밀 중 보시바라밀은 물질적인 베품(재시財施), 진리를 알려줌(법시法施), 두려움을 없애고 안심하게 함(무외시無畏施) 등의 세가지를 베푸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급변기에 가장 요청되는 것은 안심을 주는 무외시이다.


”(달마대사에게) 신광(혜가 대사)이 말했다. '저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부디 편안케 하여 주십시오. (光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대사가 말했다.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가) 편안케 해 주리라. (師曰 將心來 與汝安).'


(혜가가) 대답했다. '마음을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曰 覓心了 不可得).'


대사가 (다시) 말했다. '네 마음을 벌써 편안케 해 주었느니라 (師曰 我與汝安心竟).'“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T2076_.51.0219b21-23]


이것이 달마대사에서 6조 혜능까지 이어지는 안심(安心)법문의 시작이다. 3조 승찬대사와 4조 도신대사의 문답을 보자. ’무엇이 부처님 마음입니까? [如何是佛心(여하시불심)]‘


(승찬)대사가 답하기를, ‘지금 너는 무슨 마음이냐? [師答曰(사답왈) 汝今是什麽心(여금시십마심)]’

도신이 답하기를, ‘아무 마음도 없습니다. [對曰(대왈) 我今無心(아금무심)]


’그렇다면 너도 마음이 없는데 부처님께 무슨 마음이 있겠는가? [師曰(사왈) 汝旣無心(여기무심) 佛旣有心耶(불기유심야)]‘


’스님 제게 해탈묘법을 가르쳐주십시오. [又問(우문) 唯願和尙敎某甲解脫法門(유원화상교모갑해탈법문)]‘ ’해탈이라니 누가 너를 잡아매었느냐 [師云(사운) 誰人縛汝(수인박여)]‘


’아무도 잡아맨 사람이 없습니다. [對曰(대왈) 無人縛(무인박]]

‘아무도 잡아매지 않았다면 곧 해탈인데, 다시 무슨 해탈을 구하겠느냐 [師云(사운) 旣無人縛汝(기무인박여) 卽是解脫(즉시해탈) 何須更求解脫(하수갱구해탈)]’


[조당집祖堂集 B25n0144 0339a04-08]


여기에서 혜가와 도신은 스승과의 문답을 통해 안심(安心)을 얻는다. 외부환경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을 돌이켜 살펴보아 마음에 대전환이 일어나 불안이 해소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도구로 하여 마음을 살펴(념念; Skt. smṛti; Pāli sati; mindulness, awareness)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 인간의 불행 또는 괴로움이 해소되고 극복되어질 수 있는 것이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이고, 이는 붓다의 4제법(四諦法 ;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몇 년 전 국제포교사회 주최로, 카이스트(KAIST)대학교 학생(외국인 20여명과 한국인 10여명)그룹과 함께 법주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다. 여러 프로그램 중에 ‘인생은 즐거운가 괴로운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도 가졌다. 학생들 모두가 나름대로 인생은 ‘즐겁다’거나 ‘괴롭다’거나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각자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제의 예를 들고 논리를 전개하는 등 진지하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과연 인생은 즐거운가 괴로운가?


이천 오륙백년 전 청동기 문화에서 철기문화로 넘어가면서 철제기구의 사용으로 농업 등의 생산성이 괄목할 만하게 향상되었다. 따라서 자급자족하고 남는 잉여생산물(剩餘生産物)이 풍부해겼고, 이 잉여생산물의 교역이 활발해졌다. 사회형태는 이에 걸맞는 도시국가가 형성되고, 도시국가간 연합 또는 전쟁을 통한 정복에 의해 거대한 고대제국으로 이행되던 시대인 셈이다.


이러한 때 고타마싣달타는 약소국가인 카필라성의 태자로 태어났다. 태자가 태어난 후 부왕 숟도다나(정반왕)의 주변에 모여든 8명의 예언가 중 7명은 미래에 태자에게 오게 될 두가지 가능성을 예언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왕(전륜성왕)이 되든가, 출가해서 붓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예언가 콘다냐는 오로지 ‘붓다가 될 것이다.’고 단언하였다. 예언을 접한 부왕 숟도다나는 어떻게 하든 태자의 출가를 막고, 전륜성왕으로 키워 주변 강대국들을 누르고 카필라가 융성하기를 바랐다.


이런 의도를 가진 부왕의 아낌없는 배려로 삼시전(三時殿)을 오가며, 풍요를 넘어 사치스런 생활에 파묻혀 살았지만, 태자는 행복하지 않았다. 동남서의 3개 성문 밖 나들이에서 차례로 맞닥뜨린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른 인간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괴롭고 불안했다.


죽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어느날 싣달타는 북문 밖에서, 똑바로 앞을 응시하며 당당하면서도 고요하고 평온한 몸가짐으로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함께 간 마부 찬다카는 이 사람은 인생의 큰 문제를 풀 수 있는 진리를 찾고자 집을 떠나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수행사문이라고 귀띔하였다.


이 당시 빠르게 변동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희생(犧牲)과 제의(祭儀)가 능사(能事)인 기존의 종교로는 더 이상 위안을 얻지 못하였다, 불안이 팽배해져, 정신적 안정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충족시킬 새로운 사상이 요청되었고, 이에 따라 6사외도(六師外道)를 비롯한 많은 신진 사상가들이 출현하였다. 여기에 합류하는 많은 출가사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노병사(老病死) 우비고뇌(憂悲苦惱)를 겪어야만 하는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고 여기는 싣달타는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찾고 생사(生死)를 벗어나고자 출가사문의 길을 택하였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토론회에서, 나의 총평은 다음과 같았다.


 “‘인생은 즐겁다.’ 또는 ‘인생은 괴롭다’라는 견해는 모두 일리가 있고 하나의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런데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불교를 할 필요가 없다. 불교의 핵심은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로서 인생은 고(苦)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생은 사고팔고(四苦八苦 ; 생 노 병 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오음성고)로 가득 차 있다는 제苦諦)’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고의 원인은 무엇인가? 욕애·유애·무유애의 세가지 갈애渴愛(Skt. tṛṣṇā; Pāli taṇhā; desire, craving)이다(고집제苦集諦). 관능적인 욕망인 욕애欲愛(Skt. kāma-tṛṣṇā; Pāli kāma-taṇhā; sensual desire)와, 무엇이 되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은 당길심인 유애有愛(Skt. bhava-tṛṣṇā; Pāli bhava-taṇhā; desire to become)는 중국 선종 3조 승찬대사가 지은 신심명의 ‘단막증애(但莫憎愛)’의 애(愛)이다. 무엇을 회피하고 싶고 멀리하고 싶은 밀쳐냄의 무유애無有愛(Skt. vibhava-tṛṣṇā; Pāli vibhava-taṇhā; desire to get rid of)는 ‘단막증애’의 증(憎)이다. 3조 승찬대사의 단막증애는 6조 혜능대사의 불생증애(不生憎愛)로 계승된다.


고(苦)의 소멸은 이러한 갈애의 남김없는 쇠퇴와 중단, 포기, 떠남, 놓아버림과 제거이다(고멸제苦滅諦). 이는 곧 단막증애의 단막(但莫)이고 불생증애의 불생(不生)이다.


고멸(苦滅)에 이르는 길은 팔정도(八正道)이다(고멸도제苦滅道諦). 곧 축약하면 계정혜(戒定慧) 3학(學)이고, 대승의 6바라밀(六波羅蜜)이다.”


 ‘인생이 즐겁다’는 사람은 불교가 필요 없는 반면에 인생이 괴로운 사람은 붓다께서 발견하고 열어보인 고(苦)를 소멸하는 길을 따라가면 고멸(苦滅; 열반,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 곧 활짝 꽃핀 인간이 되어 행복하고 유익하고 청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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