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여사인(呂舍人)에 관한 답서(2)

장백산-1 2018. 11. 3. 14:32

[김태완의 '서장(書狀)'통한 선공부]


여사인(呂舍人)에 관한 답서(2)  범부는 사량분별(思量分別) 속에 머물며 집착


"[마른 똥막대기]는 어떻습니까? 붙잡을 곳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뱃속이 갑갑함을 느낄 때가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다만 세간의 잡다하고 피곤한 일들을 사량(思量)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른 똥막대기] 위에 돌려 놓고, 사량하고 또 사량하여서 어떻게도 사량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 기량이 문득 다하면, 곧 스스로 깨달을 것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린다면 영원히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다른 일은 결코 사량하지 말고 다만 [마른 똥막대기]를 사량하되, 언제 깨달을 것인가는 묻지 마십시오. 지극히 빌고 빕니다.


깨달을 때에는 시절도 없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도 않으며, 즉시 고요해져서 저절로 부처도 의심하지 않고 조사(祖師)도 의심하지 않고 삶도 의심하지 않고 죽음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곳에 이르는 것이 바로 부처(佛)의 지위(地位)입니다.


부처의 지위에서는 본래 의심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유(有)도 없고 무(無)도 없고 열반도 없고 반야(지혜)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이렇게 말하는 자도 없고, 이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음을 아는 자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는 자도 없습니다."



범부중생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늘 불안에 떨면서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찾고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이 범부중생라고 할 수 있다. 왜 불안한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불확실하고 의문스러운가? 깨달음의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범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깨달아서 지혜의 바른 눈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 공부의 가장 요긴한 부분은, 어떻게 하면 지혜의 바른 눈을 갖추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직 지혜의 눈을 갖추기 전이라면 불확실하고 의문스러움에 의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반드시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집착하기 마련이다. 지혜의 눈을 갖추기 이전에 범부가 가진 눈이란, 보고·듣고·냄새 맡고·맛 보고·느끼고 의식으로 생각을 하는 이른바 6근(根)의 눈이다.


그러므로 범부중생은 보이는 것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들리는 것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냄새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맛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느낌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생각에 의지하고 집착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뿌리 깊은 집착은 생각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 즉 사량분별(思量分別)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부중생은 사량분별(思量分別) 속에서 온갖 사량분별(思量分別)인 선(善)과 악(惡)을 찾으며, 중생과 부처를 찾으며, 옳음과 그름을 찾으며, 마음과 대상을 찾으며, 지혜와 어리석음을 찾으며, 삶과 죽음을 찾으며, 윤회와 해탈을 찾으며, 돈오(頓悟)를 찾고 점수(漸修)를 찾으며, 주관과 객관을 찾으며, 이렇게 말하고 듣는 자를 찾으며, 선(禪)을 찾고 도(道)를 찾으며, 공부를 찾고 깨달음을 찾는다.


범부는 이와 같이 사량분별(思量分別) 속에서 모든 분별을 찾아서 분별에 머무르고 집착한다. 그러나 사량분별(思量分別) 속에서 온갖 사량분별(思量分別)인 무엇에 머무르고 의지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뿐이고, 그 머무름과 의지가 또 하나의 불안의 원인이 되어 사실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의심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지할 무언가를 찾는 그 마음을 포기함으로서,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는 막막한 상황에 직면하고, 이 막막한 상황에서 본래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참된 존재, 참나, 본성, 도(도), 진리, 본성, 깨달음이라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처럼 잡을 것 없는 곳에서 살아 있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이며, 지혜의 바른 눈을 갖추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완전히 놓아버림 속에서 되살아나는 이러한 체험이 없다면 아무리 오래 선을 공부하고 마음공부를 하고 좌선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다 의식(意識) 속에 의지하여 꾸며내는 망상(妄想) 환상(幻想) 허깨비일 뿐이다.


김태완 / 부산대 강사 .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