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어남)과 사(죽음)을 벗어나 있는 이것
[원각경 강설] 57 - - 몽지
“온갖 욕망이 있음에 연유해서 애욕의 성품이 일어나도록 도우니,
이런 까닭에 능히 생겨남과 죽음을 서로 서로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욕망으로 인해 애욕이 생기고 목숨으로 인해 욕망이 있는데,
중생이 목숨을 사랑하는 것은 도리어 욕망의 근본에 의지하는 것이다.
애욕은 원인이 되고 목숨을 사랑하는 것은 결과가 된다.”
유유제용(由有諸欲)。조발애성(助發愛性)。시고(是故)。능령생사상속(能令生死相續)。
욕인애생(欲因愛生)。명인욕유(命因欲有)。중생애명환의욕본(眾生愛命還依欲本)。
애욕위인애명위락(愛欲為因愛命為果)。
【강설】
법에는 다른 법이 없거늘 법무이법(法無異法)
망령되이 스스로 법에 애착하여 망자애착(妄自愛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려 하니 장심용심(將心用心)
어찌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기비대착(豈非大錯)
욕망은, 눈앞의 한 덩어리 허공 가운데, 이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 허공에서 분리된 나 자신으로 여겨서
그 허상에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착각(錯覺)이다. 스스로를 분리된 별개의 주관으로 삼고 나머지를
역시 분리된 주관과 분리된 별개인 객관으로 삼아서 한바탕 꼭두각시놀음, 허깨비놀음을 벌이고 있는 것이
소위 인생, 삶, 세상이다.
애욕, 애착으로 말미암아 연극인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사(生死)의 무대가 펼쳐져 벌어지니 그 근원에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어두운 무명(無明)이 있다. 태어나다니 이 무슨 망발이냐? 죽다니 이 무슨 잠꼬대하는
소리냐?
한 가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곧 태어남이고, 한 가지 생각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곧 죽음이다.
그러나 그 한 가지 생각은 어디에서 홀연히 일어났다가 다시 어디로 홀연히 사라지는가?
쯧쯧쯧, 태어남이라는 생각이 와도 온 곳을 모르고 죽음이라는 생각이 가도 가는 곳을 모르니
불쌍하다 해야 하는가, 어리석다 해야 하는가?
오직 한 물건이 있어 항상 영원히 홀로 드러나서 독유일물상독로(獨有一物常獨露)
흔들림 없이 고요하여 생사를 벗어나 있네. 담연불수어생사(湛然不隨於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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