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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장백산-1 2019. 1. 11. 16:17

“깨달음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황벽이 답했다.


“깨달음은 처소(處所)가 없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중생은 깨달음을 잃을 수 없다. 

깨달음은 몸으로 얻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 얻을 수 없으니, 일체중생이 곧 깨달음의 모습이다.”


(선어록과 마음공부 p232)


깨달음은 따로 뭐 어떤 특정한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엇이 

깨달음, 즉 부처냐’, 어떤 특정한 사람이 부처냐’,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곳에 있느냐’. 깨달음, 즉

부처는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래서 부처가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부처이기에 부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중생은 깨달음을 잃을 수 없다. 우리가 이제 중생과 부처라는 분별하는 이름으로

나누어놓으니까 중생이라는 분별 부처라는 분별이 생기고 그러니까 중생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뭐 이런 분별을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지만,


하나의 마음자리, 하나의 성품자리에는 부처다 중생이다,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는 그 어떤 분별 

차별도 붙을 자리가 없고, 그 어떤 단 한마디 말도 붙을 자리가 없다,라는 겁니다. 깨달음, 부처, 마음은

‘몸으로 얻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으니, 일체중생,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곧 깨달음의 모습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본래 이미 완전한 깨달음의 모습을 

완벽하게,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라는 말입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