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황벽이 답했다.
“깨달음은 처소(處所)가 없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중생은 깨달음을 잃을 수 없다.
깨달음은 몸으로 얻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 얻을 수 없으니, 일체중생이 곧 깨달음의 모습이다.”
(선어록과 마음공부 p232)
깨달음은 따로 뭐 어떤 특정한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엇이
깨달음, 즉 부처냐’, 어떤 특정한 사람이 부처냐’,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곳에 있느냐’. 깨달음, 즉
부처는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래서 부처가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부처이기에 부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중생은 깨달음을 잃을 수 없다. 우리가 이제 중생과 부처라는 분별하는 이름으로
나누어놓으니까 중생이라는 분별 부처라는 분별이 생기고 그러니까 중생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뭐 이런 분별을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지만,
하나의 마음자리, 하나의 성품자리에는 부처다 중생이다, 깨달았다 깨닫지 못했다는 그 어떤 분별
차별도 붙을 자리가 없고, 그 어떤 단 한마디 말도 붙을 자리가 없다,라는 겁니다. 깨달음, 부처, 마음은
‘몸으로 얻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으니, 일체중생,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곧 깨달음의 모습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본래 이미 완전한 깨달음의 모습을
완벽하게,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라는 말입니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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