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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신통력이란?

장백산-1 2019. 1. 29. 00:49

여섯 가지 신통력이란?


무릇 부처(깨달음)의 육신통이란 모양의 세계에 들어가지만 모양에 속지 않고, 소리의 세계에 들어가지만 소리에 속지 않으며, 냄새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냄새에 속지 않고, 맛의 세계에 들어가도 맛에 속지 않고, 감촉의 세계에 들어가도  감촉에 속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것의 세계에 들어가도 이 세상 모든 것에 속지 않는 것이다.

(선어록과 마음공부 p256)


이게 진짜 신통력입니다. 안이비설신의 여섯 감각기관을 자유자재로 쓰고 살면서도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뜻)으로 그것들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사물, 소리, 냄새, 맛, 감촉, 모든 현상)을 접촉하면서 살더라도 그것들에게 속지 않는 것이 해탈, 열반, 깨달음 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 무의식계라는 말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눈으로 세상을 보더라도 있는 그대로 볼 뿐,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않고, 좋다 나쁘다에 집착해서 좋은 거는 취하려고 하고 싫은 건 멀리 밀쳐내려고 하는 취사간택하지 않는 것이지요. 왜? 보이는 대상에 속지 않으니까.


칭찬하는 말을 듣고 좋아하고 더 듣고 싶어 하고,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빠하고 서글퍼하고 가슴 아파서 상처받고 하는 그런 것이 그렇지  않다는 말이지요. 소리라는 것은 허망한 소리, 공기의 파동이라는 것은 분별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걸 소리 파동일 뿐이라고 해서 밥시간 돼가지고 “짜장, 짬뽕, 뭐 먹을 거냐.” 묻는데 얘기도 안 하진 않는단 말이지요. 말 하는 그 소리의 파동을 알아듣고 내가 마땅히 말도 하는 거죠.


“난 뭐 먹고 싶다.”는 말은 한단 말이지요. 소리의 파동을 써먹을 줄 아는 거예요, 백 프로 써먹을 줄은 아는데, 거기 속지는 않는 거지요. 남들이 나보고 막 뭐라고 욕을 하고 했을 때 그 욕을 지혜롭게 들을 때는 욕을 얻어먹어서 괴로워하는 마음은 내려놓고. 다만 그 욕을 ‘저 사람의 말이 좀 과한 얘기긴 하지만 저렇게 얘기한 것은 뭔가 나에게도 저런 면이 일부 있긴 있나 보구나’ ‘저걸 내가 좀 고쳐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일부 할 수는 있지요.


남이 내게 한 욕 그것 때문에 상처받아서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색깔 세계에 살면서도 색깔(모습, 모양, 개념, 관념, 相)에 속지 않는 겁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고 어떤 모습,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에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쓰고 사는 거지요. 소리를 들을 때도 소리에 속지 않고, 냄새를 맡으면서도 냄새에 속지 않고, 맛을 보면서도 맛에 속지 않고, 우리는 다 모양에 속고, 소리에 속고, 맛에 속고, 맛에 소고, 촉감에 속고, 생각에 속고 살거든요. 


돈이 많을 때는 마음껏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었는데 갑자기,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계세요. 옛날에는 돈이 더 많았지만. 사업을 하시는 분들 보면 사업을 잘 하시다가 갑자기 확 망해서 너무 힘들어지고 또다시 어떻게 버텨내시고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과 제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저는 정말 옛날에나 있을 법한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 지금 이 시간에 항상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구나 라는 걸 느낀 것이. 너무 심각하게 망한 분들 같은 경우는요.


정말 당장 오늘 내일 먹을 밥조차 먹을 돈이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학원, 과외를 시키기는커녕 학교조차 보낼 수가 없을 정도로. 그래서 어떤 분은 너무너무 힘들고 너무너무 가난해서 이걸 애들한테 말할 수도 할 수 없고 그냥 애들은 막 짜증만 내고 맛있는 반찬이 없다고 하는데. 말도 못 하고 그러다가 ‘내가 돈이라도 좀 벌면 애들 맛있는 거 사줘야지’ 라고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조금 조금씩 이래저래 벌고 갚아가고 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큰맘 먹고 “야 오늘은 외식하자.” 그래서 데리고 나가서 팔천 원짜리, 가족이 팔천 원짜리를 네 명이 밖에 나가서 맛있게 사 먹고 집에 이렇게 걸어서 들어가는 얘기를 하면서 그때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팔천 원씩이나 하는 밥을 나가서 사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한동안의 기간 동안. 그 정도로 확 망해버리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우리는 눈에 그렇게 안 보이니까 잘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까지 힘든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때 그분들 중에 이제 이런 얘기를 하는 분이 계셨어요.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내가 가난했을 때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다. 나는 사실 뭐 밥이나 김치만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옛날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 가서 가끔 회식도 하고 맛있는 맛 집도 찾아다니고 얘들이 ‘뭐 먹고 싶다’ 이러면 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그걸 못하니까 너무너무 정말 자괴감이 들고, 너무너무 정말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고, 또 본인 스스로도 되게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 느낌. 내가 비참해졌다는 느낌. 그게 나를 너무 괴롭혔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게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겁니다. 사실은 비싼 밥을 먹는 거나 그냥 소박하게 밥이랑 김치를 먹는 거나 건강으로 따지면 오히려 밥이랑 김치를 먹는 게 더 건강할 수도 있거든요.


저는 여기 국방부 원광사 와서는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음식을 잘 챙겨 먹고 있는데. 보통 군에 계시는 법사님들이나 민간 스님들도 마찬가지고 아마 여러분들도 그러실 거예요. 보살님들도 집에 계실 때 귀찮아서 그냥 대충 밥그릇 하나 들고 김치나 좀 찢어서 드시듯이 그걸 가지고 비참하다고 생각 안 하잖아요. 아 그냥 김치랑 대충 먹을 수도 있고. 애들이 먹다 남은 걸 이렇게 드실 수도 있고. 저는 뭐 요리하고 이런 거 자체를 되게 싫어하는 스타일입니다. 뭐 귀찮아하고. ‘내가 굳이 이걸 요리해가지고 먹어야 되나’ 이런 스타일이라 그냥 있으면 있는 거 먹고, 없으면 그냥 말고. 


한때는 상추를 이렇게 가꾸고 했는데 이런 것도 좀 그래서 그 군부대 주변에는 다 오염이 안 돼 있잖아요. 한동안 제가 상추나 이런 것들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도 한때지 한때가 지나니까 그것도 귀찮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야 내가 상추나 이런 것들을 키워서 먹느니’ 군부대 안에는 너무나도 청정한 곳이잖아요. 내가 이거 나물, 약초를 공부하는 편이 훨씬 낫구나 싶어서 이제 약초랑 나물을 공부해보니까 여러분들은 모르실 텐데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 풀들 있잖아요. 일반 풀들이 전부다 나물이고 전부다 약초입니다. 못 먹는 몇 가지 있어요. 독기가 좀 있다든가 이런 독성분이 있는 몇 가지만 빼고는 전부다 먹어도 되는 것들이에요. 그걸 아니까 못 먹는 게 없어요. 그거를 뜯어서 그냥 된장에 찍어 먹을 수도 있고. 이럴 테면 그렇다는 거지요.


제가 돈이 없어서 그렇게 먹겠습니까? 돈이 없어서 그래 먹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보세요. 똑같이 김치랑 밥만 먹어도 비참하게 느끼는 사람도 비참하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가 그렇게 느끼기 시작한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런 풀 조차 김치조차 밥조차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매일같이 배부르게 밥과 김치를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또행복한 거겠어요.


이처럼 이렇게 육근(눈, 귀, 코, 혀, 피부, 마음)으로 육경(사물,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을 접촉하면서도 육근, 육경 거기 속지 않는 것, 그게 진짜라고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게 육신통(六身通)입니다. 육근, 육경에 속지 않는 그게 진정한 신통력이지, 뭐 전생을 보고 타심통(他心通)이 열리고 심지어는 축지법(縮地法)이라는 이거는 잚못된 것입니다. 외도입니다, 외도. 분명하게 외도의 신통입니다. 육신통이 열렸다고 해서 심지어 그걸 광고하는사람이 있다면 그냥 여러분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를 하시면 돼요. ‘아 저 사람 사이비구나’ ‘삿된 길을 가는 사람이구나’ 라고. 정확한 답입니다, 


육신통 그것은 그러니까 외도의 신통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우리가 그런 사람들 종처럼 노예가 돼버려요. 그것을 광고하는 사람은 그걸 가지고 남들을 지배해서 뭔가 돈이나 재물을 뜯어내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이 그걸 광고해요. 그러지 않으면 뭐 하러 그런 광고를 하겠어요. 그래서 그런 올바르지 못한 것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