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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400Km이지만 거리가 없다

장백산-1 2019. 2. 3. 23:01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400Km이지만 거리가 없다


“조주에서 진부(鎭府)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300리다.”


“진부에서 조주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거리가 없다.”


(선어록과 마음공부 p269)


여기서 저리로 가는데 거리가 300리 라면 저기서 여기로 오는데도 300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뭐냐면,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은 세간과 출세간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수 있어야 됩니다. 세간적인 얘기를 할 때는 세간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고 출세간적인 얘기를 할 때는 출세간적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간적인 얘기를 하고 있어요. 아는 사람들이나, 신도님들이나, 아니면 법당에 온 사람들 뭐 이런 다양한 사람들하고 이런저런 세산적인 이 세상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세간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이 세상 얘기, 세산적인 얘기를 하고 그러면서 이게 좋냐 저게 좋냐, 뭐 드라마가 어떻고, 연예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얘기하고들 있을 때 나 혼자 얘기 안 하고 그냥 입 딱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제가 그런 얘기 많이 듣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을 하지요. 사람들과의 친화력이 없다든가 아니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얘기를 적당히 해줘야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분별하는 생각으로 해석할 게 없으니까 나 혼자 가만히 있겠다고 조용히 있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해 하겠어요. 


그래서 좋다는 얘기도 하고 싫다는 얘기도 하고 그냥 사람들 속에 섞여서 그냥 세간적인 말을 하는 거지요. 그거는 그렇게 세간의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예를 들어 ‘야 저 사람도 뭐 어쩔 수 없구만. 저 사람도 우리와 똑같이 정치 얘기 하고, 뭐 얘기하고, 뭐 얘기하고’ 한다 이렇게 판단하고 해석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판단 해석을 스승은 해도 됩니다.


그래서 스승은 제자에게 어떻게 하느냐면 제자에게 세간의 일을 묻습니다. 혹은 제자가 세간적으로 묻는 것은 세간으로 답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세간적으로 묻고 세간적으로 답하다가 갑자기 道, 진리, 깨달음, 부처 法인 출세간으로 넘어와 버립니다. 제자가 늘 法, 부처, 진리, 깨달음, 道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아니면 세간에 완전히 끌려가버렸는지 확인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자가 조주에서 진부까지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물으니“300리 될 거야.” 이렇게 답을 했는데, 다시 한 번 그러면 “진부에서 조주까지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물을 때는 道, 진리, 깨달음, 부처, 法으로 출세산적으로 답을 한 겁니다. 출세산인 道, 法, 진리, 부처, 깨달음의 세계에는 “거리가 없다.”고 답을 한 겁니다. 


道, 法, 진리, 부처, 깨달음, 출세간에는 여기 저기 라고 하는 분별이 없습니다. 시간, 공간 이런 분별이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다 하나의 진리, 하나의 부처, 하나의 道, 하나의 깨달음, 하나의 法 그리고 하나의 허공성(虛空性)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시간, 공간이 없는 그냥 텅~비어있는 말할 수 없는 그것 하나의 진실만 있습니다. 하나의 진실 이것을 道, 法, 진리, 부처, 깨달음이라는 방편(方便)의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다. 일진법계(一眞法界)라고도 말 하는 하나의 진실 거기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어요. 그러니까 法, 道, 부처, 진리, 깨달음의 세계, 출세산의 세계에는 '거리가 없다고', 즉, 공간과 시간이 없다고' 이렇게 답을 한단 말이지요.


스승이 제자들과 산책을 하다가 물오리가 날아가니까 날아가는 물오리를 보고서는 한참 있다가 물오리가 산 너머로 넘어가니까 “저 물오리가 어디로 갔느냐?” 하고 제자들에게 물어봅니다. 제자는 당연히 “저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니까 스승한테 한 대 맞습니다. 그 물오리라는 경계(境界, 대상, 현상)을 쫓아갔기에 한 방 맞는 겁니다, 마음이 대상, 현상, 경계를 쫒아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사는 이 세간과 세간 너머 출세간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고 가면서 스승은 제자들을 이런 방식으로 일깨워주는 겁니다.


-법상 스님- 법문 녹취 by 하이얀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