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지극한 도(至道)

장백산-1 2019. 3. 9. 16:51

지극한 도(至道)



지극한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가려내고 선택함을 멀리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미워하고 좋아하는 분별만 하지 않으면 도는 막힘없이 툭 트여 밝고 환하리라.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신심명(信心銘)』


지극한 도란 무엇인가. 지극한 도란 사람이 가장 바라는 인생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각각 가장 바라는 인생이 있다. 하지만 가장 바라는 인생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바른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심명』의 저자 승찬(僧璨, ?~606) 대사는 첫 구절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인 지극한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지극한 도는 단지 가려내고 선택하는 분별하는 마음을 경계하면 될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분별심만 일으키지 않으면 도는 눈앞에 막힘없이 툭 트여 명백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삶은 보편적으로 한평생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려내고 선택하는 분별하고 나눠서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렇게 가려내고 선택하고 분별하고 나누는 일의 연속이 보통 사람들의 살림살이다. 언제나 매사에 머리를 굴려 헤아리고 따지고 해석하면서 내가 그어놓은 선이나 내가 세워논 틀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분별해서 가늠해본다. 가려내고 선택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분별을 하는 일로 온통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한 분별을 일삼는 삶에는 언제나 편벽과 집착과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분별하는 편벽과 집착에 빠지게 되면 또 시비하고 비교하고 대립하게 된다. 시비와 비교와 대립은 갈등을 일으킨다. 갈등은 그대로가 고통이다. 이렇게 되면 가장 진정으로 바라는 행복한 인생, 지극한 도는 내게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지극한 도의 삶, 곧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행복한 삶은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중도(中道)의 안목, 즉 분별하지 않는 안목을 갖게 될 때 이루어진다. 이것은 마치 강이 양쪽 언덕에 의해서 존재하고, 강에서 배를 운행하는 것도 양쪽 언덕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과 같다. 그러나 양쪽 언덕이나 그 가운데 있는 어느 하나에 배가 머물러 있다면 그 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양쪽 강뚝을 이용하되 이쪽 강뚝에도 머물지 말고 저쪽 강뚝에도 머물지 않고, 중간에도 머물지 않아야 배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다. 세상은 온통 상대적(相對的) 관계 (關係) 속에서 형성되어 있다. 이것이 연기(緣起)의 이치다. 하지만 상대적 관계 속에서도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조화시킬 때 중도적(中道的) 삶, 지극한 도의 삶이 보장된다.


법정 스님은 신심명의 이 첫 구절을 ‘인연(因緣) 따라 마음을 일으켜라’ 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풀었다.


세상에는 너무 좋아할 것도 없고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사람들이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 분별하는 마음에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 분별하는 마음에서 오며, 죽음이라는 괴로움 또한 삶을 좋아하는 분별하는 마음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 사람을 좋아하는 분별하는 마음에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 분별하는 마음에서 온다. 이렇듯 사람들이 겪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둘로 나누는 분별하는 마음으로 인해 온다.


좋아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둘로 나누는 분별하는 마음만 없다면 괴로울 일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도 하지 말고, 미워도 하지 말고 그냥 목석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사랑에 집착함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미워함에 오래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어느 한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바 없이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해야 한다. 인연(因緣)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因緣) 따라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분별하는 마음과 집착하는 마음만은 놓아야 한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④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