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활동가의 연기설(緣起說)에 관한 오해
“십이연기설은 불자들이 추구할 바 못돼”
모 불교 시민운동 단체에서 주관한 행사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행사 첫머리에 주제발표가 있었다. 들어보니 연기사상(緣起思相)에 입각해 사회운동을 활발히 펼쳐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발표자가 말하는 연기(緣起)와 관련한 내용들이 너무 빈약하고 문제도 적지 않았다.
우선 어떤 연기설(緣起說)인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연기설(緣起說)에는 십이연기설을 비롯해 업감연기설, 육육연기설, 육대연기설, 진여연기설, 아뢰야식연기설, 법계연기설 등이 있다. 발표자는 어떤 연기설에 입각해 불교운동을 해야 하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그저 피상적으로 “연기적 삶”이니 “연기적 관계”니 하면서 연기(緣起)를 강조했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은 지금 어떤 연기설에 대해 말씀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발표자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게 연기설”이라고 답했다.
나는 다시 “선생님이 방금 '이것'과 '저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이며 저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발표자는 “ '이것'과 '저것'은 상의상존(相依相存) 관계입니다. 내가 있으니까 네가 있고 네가 있으니까 내가 있는 것입니다. 만물(萬物)은 이와 같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말은 세상만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발표자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연기설을 만물 상호의존 원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발표자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선생님이 ‘이것’과 ‘저것’을 중심으로 연기를 설명했지만 실은 ‘이것’과 ‘저것’은 어떤 물질이나 사람 혹은 생명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중생의 괴로움(苦)이 발생(發生)하는 순서와 중생의 괴로움이 소멸(消滅)하는 순서를 밝힌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에서 나온 말이 '이것'과 '저것'이다. '이것'인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저것'인 ‘행(行)’이 있고, '이것'인 ‘행(行)’이 있으므로 '저것'인 ‘식(識)’이 있다는 방식으로 12종류의 고리들, 즉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들이 앞의 ‘이것’에 의해 뒤의 ‘저것’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이것’과 ‘저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설(緣起說)은 괴로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속하므로 전혀 좋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지금 연기설을 거꾸로 알고 있음을 말했다. ‘이것’과 ‘저것’은 소멸되어야 할 분별(分別)하는개념(槪念)들이지 결코 권장돼야 할 것이 아니다. '이것'인 ‘무명’이 없으면 '저'것인 ‘행’도 없어지고, '이것'인 ‘행’이 없어지면 '저것'인 ‘식’도 없어지는 방식으로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들이 모두 없어져 십이연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과 ‘저것’이라는 분별에 기초한 십이연기의 발생은 중생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진리이고, 십이연기를 소멸(消滅)하는 것이 바람직한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선생님이 주장하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으니까 '이것'과 '저것'을 배척 관계로 보지 말고 상의 상존 관계로 보아야한다’는 연기설 견해는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십이연기설을 사회운동의 이념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어울리지도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발표자는 자신이 불교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교리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도 않은 채 피상적으로만 연기설을 알고 있었다며 언제 만나서 고견을 듣고 싶다는 말로 내 의견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주었다.
원력과 소신을 지니고 척박한 불교환경 속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분들의 열정적인 노력에 비추어 교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부족한 점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활동에 반드시 교리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기본적(基本的)인 개념들에 대해서는 명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81호 / 2019년 3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통 도(道) 아닌 것이 없다 (0) | 2019.03.24 |
---|---|
죽기 전에 미리 반드시 해야만 할 공부 (0) | 2019.03.23 |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인 - 죽는 순간에도... (0) | 2019.03.21 |
무상(無常)으로 시작한 지혜(智慧) (0) | 2019.03.21 |
다만 견성하면 문득 습기가 멸하고, 정신과 의식이 어둡지 않아 즉각 알아차린다 (0) | 2019.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