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마광수교님 타계하시던 그해에 올렸던 글 입니다]
천국과 지옥 - 마 광수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죽은 뒤 무엇이 있다면 그건 천국뿐이 아닐까 싶어요.
어렸을 적, 나는 단테의 <신곡(神曲)> 이야기를 듣고 잠을 못 잤어요.
불길이 타오르는 지옥의 처참한 광경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실수로라도 죄를 짓게 될까봐 안절부절했습니다.
그리고 제발 저를 천국으로 보내줍시사고 하느님 아버지께
열심히 기도를 드렸지요.
그런데, 나도 이젠 다 자라 어른이 되고 보니 하느님 아버지가 무섭지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예요?
자식이 여럿 있는 아버지가 있다고 합시다.
어떤 자식은 철이 들어 아버지께 효도를 하고
어떤 자식은 삶을 증오하여 아버지께 핑계를 댑니다.
어떤 자식이「아버지, 왜 날 낳으셨어요?」하며 제 아버지를 미워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러는 자식을 미워하여 「이놈 자식, 죽여버려야지」하고
마음먹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어찌 생각하면 그 아들 말도 옳기는 옳지요.
사실 우리들 모두가 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 나온 것은 아니거든요.
헌데 아버지까지 무서워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지옥은 없어요. 천국만 있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참 살아가는 마음이 편합니다.
굳이 착하게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은 다음에 받을 심판은 없어요.
하느님 아버지 앞엔 악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차피 부자지간으로 뭉쳐진 몸인데
「아버지, 아버지」찾아댈 필요도 없지요. 아버지한텐 다 귀여운 자식인걸요, 뭐.
그래서 나는 지옥 걱정없이 이럭저럭 태평하게 지냅니다. 죽은 다음엔 천국밖에 없어요.
태어나서 살아가기가 이다지 힘에 겨운데, 지옥까지 있다면 그건 너무하지 않겠어요?
(1979 년 作, 시집 <광마집(狂馬集)>에 수록)
-무진장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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