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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사는 삶

장백산-1 2019. 8. 11. 14:41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사는 삶  - - 법상 스님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일까? 어떻게 사는 삶이 바르게 사는 삶일까? 어떻게 사는 삶이 지혜롭게 

사는 삶일까? 


어떻게 하는 수행이 올바른 수행일까? 어떻게 해야 괴로움 없는 참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단순하다. 거짓을 좇지 말고, 진실만을 보면 된다. 거짓을 따라가지 말고, 진실의 삶을 

그냥 그저 살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지금 여기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것 '이것',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만이 진실이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라는 이러한 진실에 대해 내 식(識, 인식, 분별심) 대로 시비하고,

분별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해석해서 보면 그것은 곧장 거짓이 되고 만다. 


머리 속의 생각은 전부가 다 거짓이다. 머리 속의 생각은 내 식(識)대로 만들어진 허상이고, 인위적으로

조작된 가짜, 허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앞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실상, 진실로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 좋다 싫다, 키가 크다 작다, 능력이 있다 없다, 나와 친하다 친하지 않다, 등등 오만가지

분별심인 생각을 개입시켜 보는 것면 그렇게 상대를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분별심, 생각, 허상, 거짓을 좇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사람들마다 그 사람을 판단하는 바는 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 그 판단들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나온 허망한 허상이고, 거짓이다. 


진실은 바뀔 수가 없다. 허망한 허상, 거짓된 허상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한 허상으로 인해 이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저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 판단은 100% 진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상만 보면, 그저 내 눈 앞, 지금 여기에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좋다 싫다, 내 편이다 내 편이 아니다 하는 등의 온갖 가지 생각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들로 인해 괴로울 수도 있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만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 사람을 허상으로 

만나지 말고, 실상으로 만나 보라. 


머릿속으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 말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만나 보라. 

그렇게 하는 것은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만나 볼 때 그 사람의 참된 진실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통해 깨어있을 수 있다. 내 식(識)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한 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으로 인해 점점 더 중생이 되어가겠지만, 내 식(識)

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만나면 그를 통해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