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적멸(寂滅)의 즐거움

장백산-1 2019. 11. 6. 16:27

적멸(寂滅)의 즐거움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는다는 이것이 생멸하는 이치이다. 

생과 멸이라는 분별이 다 소멸하고 나면, 적멸함이 즐거움이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열반경』 


열반경은 붓다 세존이 일생 동안 교화하시다가 열반에 드시는 과정과 그 광경들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그리고 열반의 의미와 열반을 통한 깨달음을 얻게 한 가르침이다. 특히 이 사구게에는 세존이 전생에 

'생멸멸이 적멸위락'이라는 한 구절의 가르침을 얻어 듣기 위해서 위법망구(爲法忘軀)하는 정신을 잘 

나타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설산 동자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수행을 위해 여기 저기 산천을 유행하다가 어느 험한 산 바위 밑에 

이르러 쉬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진리의 가르침인 게송의 반 구절 “모든 것은 무상하다 이것이 생멸의 

이치다(諸行無常 是生滅法).”라는 가르침이 들려왔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이것이 생멸의 이치다(제행무상 시생멸법 諸行無常 是生滅法).” 


설산 동자는 이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다음 구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소리를 질렀다. 

“누구신지는 모르나 그 다음의 구절을 마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소리쳤다. 그러고난 한참 후에야 나찰

귀신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 법구, 제행무상 시생멸법 (諸行無常 是生滅法)은 내가 부른 노래인데 

다음 구절을 말하려니 하도 배가 고프고 말할 힘이 없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그렇다면 제가 음식을 제공하고 나머지 법(法)을 듣고 싶은데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나는 나찰귀신이라 살아있는 사람의 뜨거운 피만 먹습니다.” 

“그렇다면 법을 듣기 위해서 내가 그것을 공양올리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듣고 죽어야지 죽은 뒤에는 설해줘야 소용이 없으니 먼저 나머지 법을 설해주십시오.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먼저 듣고 난 뒤에 죽어서 뜨거운 피를 공양드리기로 하고 들은 것이 

다음 구절이다. 


“생과 멸이라는 분별이 다 소멸하면 적멸함이 즐거움이니라(생멸멸이 적멸위락 生滅滅己 寂滅爲樂)” 


이 게송을 듣고 난 설산동자는 깨달음을 이루고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혼자만 알고 목숨을 마치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 여기 저기 바위에다 써서 두고 높은 바위에 올라가서 몸을 날려 나찰귀신에게 공양

하였다. 육신으로 법공양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 진리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또는 그 가르침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고 공양하고 희생하는 일을 위법망구(爲法忘軀) 정신이라고 하여,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칭송한다. 석가모니 세존은 그와 같은 생을 수 없이 거듭하였다고 한다. 역대 조사스님들도 

그렇게 사신 분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서부터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존재는 늘 변화를 거듭하여 

항상 그대로 있어주지를 않는다. 이것은 존재의 어쩔 수 없는 법칙이며 존재원리이다. 사람들 마음에서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들, 즉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인식으로

부터 우주와 삼라만상만물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한결같이 무상(無常)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생멸과 변화를 인식하는 우리들 마음에서부터 그 생멸과 변화가 사라진 적멸한 자리, 

즉 생멸 변화 속에서 본래로 공적(空寂 텅~비어 고요함)한 마음자리를 수용할 때, 그것을 억지로 표현

하자면 즐거움(樂)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