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虛空)에서 큰 깨우침을 얻다 - - 중관대사
山前風動心搖樹 (산전풍동심요수) 天末雲起性起塵 (천말운기성기진)
坐覺虛空生大覺 (좌각허공생대각) 丈夫於世孰爲親 (장부어세숙위친)
산 앞에 바람 불자 마음은 나무를 흔들고
하늘 끝에 구름 일어나니 본성에 먼지 낀다
허공임을 깨닫자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대장부라면 세상에서 무엇과 친해야 할까
중관대사의 ‘용문한거’ 두 수 중의 끝수이다. 자연(自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詩이기는 하나
스님으로서 자연(自然)으로부터 깨우침을 배우고 있다.
첫 詩에서는 거미의 분주함과 새의 한가로움에서 깨우침을 얻더니 두번째 이 詩에서는 허공(虛空)
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있다. 산 앞에서 바람이 불고 있어 나무가지가 흔들리지만,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려서 나무가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事物)의 움직임은 내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고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모든 사물(事物)의 존재(存在)가 내 마음에서 인식(認識)되는 것, 즉 대상이 없으면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대상이 있어야지만 마음이 찰라지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하늘 끝에 일어나는 구름 때문에 맑고 푸른 하늘은 흐려진다. 구름때문에 흐려지는 하늘은 바로
인간의 밝은 자성(自性)이 허망하고 헛된 분별 망상 번뇌 때문에 흐려지는 것과 같다. 흐려진
허공(虛空)을 보고 푸른 하늘이라고 하면 하늘은 어둠의 상징이 된다.
불성(佛性), 자성(自性), 본성(本性)이 깃들어있는 우리들의 텅~빈 본바탕을 먼지로 가려놓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참모습, 실상(實相)이라 한다면 항시 미망(迷妄)의 암흑에 사로잡힐 것이다.
허공(虛空)이 아무리 구름에 가리워져 있더라도 그 구름 뒤편에는 밝고 맑은 허공(虛空)이 있음을
아는 것이 세상의 이치와 사물의 이치를 바로 보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詩에서도 앉아서 저 허공(虛空), 즉 허공(虛空)을 가리고 있는 구름 뒤는 언제나 텅~ 빈
허공(虛空), 바로 눈앞,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라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텅~비어 있다는 뜻의 허공(虛空)이다.
구름은 결코 텅~비어 있음의 허공(虛空)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그 구름 뒤편의 허공(虛空)을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대각(大覺), 커다란 깨우침이다. 우리들의 텅~빈 본바탕을 알아차리려면 먼지에 가려지기
이전의 그 맑고 푸른 텅~빈 허공(虛空)을 알아차려야 한다.
끝 귀절에서의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무엇과 친(親)해야 할까 하는 물음은
이 詩를 읽는 사람들에게 큰 숙제를 안겨준다. 텅~비어 있음의 허공(虛空)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니
허공(虛空)과는 친해질 수도 있고 친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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