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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내 삶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멈추면

장백산-1 2020. 3. 26. 17:46

내 맘대로 내 삶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멈추면  - 법상스님


내 삶이라고 해서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보여질 때도 있기는 

하겠지만, 사실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원

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


늙고 싶지 않고, 병들고 싶지 않고, 죽고싶지 않지만, 늙음 별듦 죽음은 누구에게나 100% 반드시 

찾아오고야 만다.


1시간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해, 1주일 뒤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 1년 뒤 시험에서 합격

해야해, 나는 건강하고 아프지 말아야 해, 아내 자식들은 내 뜻을 따라 주어야 해, 남편은 나를 이해

해줘야 해, 윗층 사람들은 쿵쿵거리며 걸어다니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나에게 욕하지 말아야 해,

나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등등 이렇게 매 순간 올라오는 무수히 많은 통제 욕구를 가만히 살펴보라.


매 순간 올라오는 무수히 많은 통제 욕구가 너무나도 터무니 없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통제가 가능

하단 말인가? 삶을 완벽히 내 맘대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내 통제 아래에서 내 삶이 움직여주기를 바라지 않을 때, 그 때 삶과의 투쟁은 비로소 끝이 난다.


그렇지 않고 내 마음이 원하는대로 내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 괴로움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마다 괴롭고, 화가 나고, 답답하고, 초조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런 길을 갈 거라고? 그런 길을 정녕코 갈 것인가? 그거야 각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랬을 때, 어떤 결과가 오게 되는지는 삶에서 경험을 해서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내 맘대로 내 삶을 통제하는 것을 바라지 말고, 추구하고, 바라고, 욕망하

기를 멈추고, 그 모든 통제 욕구와 싸우며 사는 대신, 평화롭게 그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누리며 살 것이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준비된 괴로움이 없다.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언제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이러

할 뿐이다. 내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러한 삶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만 하지

않으면, 삶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자연(自然)스럽다. 지금 여기 펼쳐지는 이대로, 벌어지는 이대로의

삶이 곧 진리, 깨달음, 도(道), 부처(佛), 마음(心)이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이다.


이 진실을 깨치고 나면 더 이상 삶과 싸우지 않게 된다. 언제나 삶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완전무결하다.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흘러갈 것이다. 거대한 삶과 다툰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

지 않은가?


삶을 내 맘대로 통제하려 하지 말고, 삶을 삶 자체의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되도록 받아들이고 허락해 

주라. 지금 여기 이 자리 이 순간 현재가 곧 실재(實在)이며, 지금 여기 이 자리 이 순간의 현실이 곧 

진실(眞實)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펼쳐지는 삶 속으로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바로 진정한 나 자신, 본래의 나, 본래면목, 진리, 깨달음, 도(道), 부처(佛), 마음(心)이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이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거대한 삶 속으로 들어가 산다고 생각하면, 나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잘 되거나 잘

안 되고,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개체적(個體的)인 '나'라는 존재는 없다. 

무아(無我)다!


당신은 개체적인 '나'라는 존재 보다 훨씬 큰 존재다. 삶 자체, 우주 자체가 그대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삶을 통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이유다.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그 주체인 '나'가 실체가 

아닌 허망한 관념(觀念)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주어진 지금 여기라는 현실, 그 속에 온전히 뛰어들어, 

그것을 살아 주기를 선택해 보라. 아니,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삶이 그렇게 지금 여기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삶은 이미 수용되고 있다. 내가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 조차 없다. 다만 생각, 분별이라는 

허망한 필터로 제 스스로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하려는 망상만 일으키지 않으면 될 뿐이다! 그러면, 

그 어떤 다툼도 없다.


완전한 평화, 자유, 행복, 기쁨, 충만, 열반, 해탈, 지복, 극락, 천당,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진실이 활짝 드러난다. 이미, 언제나 삶은 그저 이러했음을 문득 확인하게 된다.


지금 여기라는 삶은 본래 아무 일이 없었음을, 전혀 통제할 필요가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