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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많은데 짜증이 날 때

장백산-1 2020. 4. 4. 01:48

할 일은 많은데 짜증이 날 때   -  법상 스님


집에 갔는데, 집안이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설겆이도 쌓여 있고, 애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양말들이 흩어져 있고, 심지어 강아지 똥까지 널려 있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런 집안 상황을 마주하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라옵니다. 아니면 이 많은 일들을 언제 다 하지 하는 생각에 한 숨부터 올라오겠지요. 그리고는 또 다시 생각의 늪에 빠져버립니다.


생각의 늪이란 아내의 경우엔 남편을 혹은 남편의 경우엔 아내를 떠올리면서 '이런 것도 안 하고 어디 간거야?', '좀 도와주면 안 되니?', '이런 일은 왜 나만 해야 하는 거야?',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이런 일에 치이며 사는 삶이 이젠 지긋지긋해', '내가 이 집 노예도 아니고 왜 나만 매일 이런 일을 해야 해?', '애들이 들어오면 한 소리 좀 크게 해 줘야겠다'...이런 끝도 없이 올라오는 무수한 생각들로 인해 청소를 하면서도 더 화가 나고, 몇 배는 더 청소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공부하는 수행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죠. 이 사람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집안에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 사람은 집안 상황을 그저 바라봅니다.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리고는 발 아래의 일부터 하나 하나 그저 할 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생각과 이야기들이 이 사람을 괴롭히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노래를 부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들으며, 혹은 법문을 들으며, 그냥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이 사람은 머릿속에서 이렇게 나를 화나게 한 '그 놈들'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강아지는 그저 똥을 쌌을 뿐이고, 내가 그것을 보았으니 그저 내가 치울 뿐입니다. 강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워할 필요도 없고, 이 똥을 보고서도 안 치웠을 지 모를 상상 속의 가족 중 누군가를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옷을 벗어놓고 빨래통에 넣지 않는 지난 수 년 동안 늘 그래왔던 아이를 미워하는 생각 대신, 그저 그 옷이나 양말을 집어서 빨래통에 넣을 뿐입니다.


이 수행자 처럼 분별을 일삼는 생각, 분별심으로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재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일 뿐입니다. 일이 있는 지금 여기 그대로 사실은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마음은 늘 평화롭습니다. 그저 인연(因緣) 따라 해야 할 일이 생겨났고, 나는 그 일을 할 뿐입니다.


이것이 인생, 삶, 세상 아닌가요?


그런 당연한 인생, 세상, 삶을 사는데 있어서, 공연히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해야 할 때 그저 그냥 하면 그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가볍고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애들이 벗어논 양말을 휴지통에 넣고, 강아지 똥을 치우는 일이 뭐 힘들게 있겠어요.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언제나 눈앞, 목전,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라는 현실이 아닌, 현실에 덧붙여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삶을 무겁게 할 뿐인 겁니다. 생각의 더미, 생각의 늪, 생각의 속삭임을 믿지 마세요. 그저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삶을 가볍게 사세요.


눈 앞,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텅~빈 바탕에 펼쳐진 인연(因緣)에 순응하며 그저 할 일을 하는 즐거움! 그것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나에게 주어진 소소한 것 같지만 눈부신 삶, 인생, 세상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