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정신적인 혁명가
세상은 깨달은 혁명가들을 원한다. 깨달은 바가 있었고, 깨달은 혁명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발전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두 가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다. 기존의 구태의연하고 잘못된 정신을 깨달은 고타마 붓다의 혁명으로 파괴하는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현상이 될 것이다.
친구가 나에게 고타마 붓다의 불상을 보내왔다. 아주 보기 드문 불상이다. 나는 그런 불상을 본 적이 없다. 불상의 한 손 위에 작은 도자기 등(燈)이 들려져 있었다. 그 도자기 등(燈) 안에 기름을 넣고 불을 붙이면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 친구가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나 역시 그 조건을 수용하고 불상을 받았다. 불꽃은 하루 24시간 동안 쉼 없이 타올라야 한다는 조건이다.” 불상의 다른 손에는 칼집이 없는 칼 하나가 들려있었다. 이것은 일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검도(劍道)와 궁도(弓道)를 명상으로 만든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명상이 검도와 궁도의 근본이다.
고타마 붓다의 불상이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은 인도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같은 불상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것이다. 작은 도자기 등불이 비추는 불상의 반쪽 얼굴은 매우 평화로워 보이고, 다른 쪽 얼굴은 마치 용감한 전사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칼처럼 예리한 모습이다. 같은 불상 얼굴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습이 있던 것이다. 평화의 손에 든 칼처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명가의 정신이고 모습이다. 내가 말하는 혁명정신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혁명정신은 분노가 아니라 창조적인 자비심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정신적인 혁명가는 단지 과거 생각의 틀을 파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혁명가의 이상과 목적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과거 생각의 틀을 깨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가 창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생각의 틀을 깨버리는 것엔 아무런 분노도 없다. 과거 생각의 틀을 깨버리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예를 들면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엔 분노가 없다.
과거 생각의 틀을 깨버리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한다. 평화 침묵 빛, 즉 인간 내면의 빛의 특성이 하나이고, 그리고 불공정하고 반인류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정신혁명이 또 하나이다. 창조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자유를 부여하고, 비폭력적인 교육, 정보 뿐만 아니라 변화를 주는 교육이 가능한 진정한 인간 사회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누구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꿔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없고, 순수한 의식상태에 있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없으며,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이 추악한 사회에 의해서 왜곡되고 오염되고 파괴되어 왔다.
인류는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낙원(樂園), 즉 에덴의 동산이 있었던 시절로부터 새롭게 다시 출발해야 한다. 분별 차별이 없는 사회를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 오쇼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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