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공덕(功德)을 구하는 자를 위한 교화법

장백산-1 2020. 5. 1. 23:15

공덕(功德)을 구하는 자를 위한 교화법


베품을 구하는 자 베푸는 자 모두 집착(執着) 없어야 


붓다, 베푸는 자 ‘집착 없을 때’ 진정한 베풂 이루어진다 설해

아무 바람없이 베푸는 자의 음식, 아무 바람없는 자 받을 수 있는 공덕


공덕(功德, puñña)이란 단어는 ‘덕행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이란 의미로 이해된다. 이 말은 동북아시아의 경우 보리달마와 양무제의 대화 내용 때문에 유명한 말이기도 하다. 이 둘의 대화는 ‘벽암록’ 제1칙에 실려 있다. 내용인즉 ‘사찰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출가자에게 공양하고, 사경을 해 왔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보리달마는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선한 일을 하면 공덕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어찌하여 보리달마는 없다고 했을까.


‘숫따니빠따’에 ‘마가의 경(Māghasutta)’이라는 경이 있다. 바라문인 마가는 정의롭게 축적한 재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베푸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붓다를 찾아뵙고 이러한 자신의 행위로 얼마나 많은 공덕을 얻을 수 있는지를 여쭙는다. 마가의 질문에 붓다는 ‘많은 공덕을 얻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이에 마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더 하게 된다.


“[마가] 구하는 바에 관대하며, 부탁을 잘 들어주는 재가자로서 공덕을 구하고 공덕을 기대하여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어 제사 지낸다면 붓다이시여! 베풀만한 가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설해 주십시오.(Sn.489)”


이 질문에 붓다는 '베풀만한 사람'이란 “①집착이 없는 자 ②모든 장애와 속박을 이미 끊은 자 ③해탈하여 바람이 없는 자 ④탐욕이 없는 자 ⑤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분별 망상 번뇌를 부순 자 ⑥허위나 독단을 지니지 않은 자 ⑦탐욕을 떠나 내 것이 없고 욕망을 떠난 자 ⑧갈애에 빠져들지 않고 거센 흐름을 건너 내 것 없이 유행하는 자 ⑨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떠한 세상에서도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없는 자 ⑩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유행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자 ⑪태어남과 죽음을 남김없이 버리고 모든 의혹을 넘어선 자 ⑫ 지혜에 통달하고 선정을 즐기며 사띠(sati)를 확립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의 의지처가 되는 자”라는 가르침을 준다.


공덕(功德)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위와 같은 베풀만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달리 말하면 베푸는 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條件)이기도 하다. 붓다는 “정의롭게 축적한 재화로 올바르게 사람들에게 베풀면 공덕이 있겠습니까”라는 마가의 질문에 ‘공덕이 있다’고 답했다. 이 대답은 보시-지계-생천의 차제법문과 같이 생천도(生天道,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길)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대답은 해탈도(解脫道, 깨달음의 길)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집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베푸는 자가 ‘집착이 없이 베풀 때’ 진정한 베풂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바람도 없이 베푸는 자가 베푸는 음식은 어떠한 바람도 없는 자가 받을 만한 음식이다. 나와 내 것이라는 분별하는 생각을 버린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나와 내 것이라는 분별하는 생각을 떠나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보면 ‘베푸는 자에게 공덕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변했는지가 분명해진다. 달마가 양무제에게 ‘공덕이 없다’라고 한 것의 의미가 마가의 질문에 대한 붓다의 이 답변에서 명확해진다. 실은 베풂을 받는 자도 없고 베푸는 자도 없다. 붓다의 이러한 가르침에 바라문 마가는 “붓다께서는 베품을 받을 만한 사람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당신께는 진리가 있는 그대로 알려졌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라고 찬탄한다. 


붓다는 세속적 차원에서의 가르침으로 시작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리의 문턱으로 이끄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대를 일깨운다. 세상 사람의 관심은 대개는 세속적 차원의 복락(福樂)이다. 세속적 차원의 복락(福樂)에 대해 세속적 차원에서 머물러 답변하면 상대는 만족할지는 몰라도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붓다의 관심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여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를 천인사(天人師, 천신과 인간의 스승)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붓다는 사람들을 어김없이 진리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35호 / 2020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