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우리는 한 시대의 종말을 보고 있다
입력 2020.09.20. 22:00
©게티이미지뱅크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감염 환자가 발생했던 지난달부터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근 한 달간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두 번 정도였다. 집에서 요리를 하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칸막이가 쳐진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올 들어 가장 많이 받은 종류의 연락은 모임이 미뤄졌거나 강연과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의료진으로 최대한 절제하며 살아야 했지만 외출할 일도 거의 사라졌다.
사람들은 점점 더 물리적 접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았다. 병원이야말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출입과 병문안이 엄격히 통제되었음은 물론이고, 감염 위험이 적다고 판단된 환자도 마스크와 고글까지 쓰고 진료했다.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환자는 무조건 감염에 준한 방역복을 입고 진료에 나섰다. 비대면 진료 또한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음압실에 있는 환자와 전화로 소통했다. 환자를 CCTV로 보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에서 침울함을 느꼈다. 가끔씩은 미소를 보이며 환자의 하소연을 듣던 일이 그리워졌고, 강연장에서 많은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이 생각났다. 대신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기운이 나지 않았다. 활자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고, 재미있고 유쾌한 발상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과 관련된 책을 간신히 읽거나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고 병원을 오가며 약간의 글을 쓰며 살았다. 당연히 우울감을 느꼈다.
대신 바뀐 삶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았다. 신종 감염병은 생각하고 싶지 않던 '만약'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고 바깥에 외출하지 않으며 끼니를 혼자 해결하고 여행을 떠나지도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가정이다. 그것은 거꾸로 우리 사회가 작동해 왔던 방식을 보여주었다.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여행계와 문화예술, 자영업 등은 복구가 어려워보이는 침체를 겪고 있다. 심지어 감염병으로부터 촉발된 사태이지만, 의료계 또한 사정이 좋지 못하다. 그야말로 모두가 힘들다.
실상 우리는 서로의 많은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사회는 구축되었다. 코로나19를 제외한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이전에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가벼운 바이러스를 옮기고는 잠깐 앓고 일어났다. 진료실에서 마스크 없이 서로의 표정을 살피거나, 야구장과 콘서트장과 비행기에서 낯선 사람 옆에 앉는 것도 그를 전제로 했다. 이는 다양한 문화와 교류의 바탕이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통제되었던 곳은 주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장소였다. 같은 생각으로 모여서 기도하는 종교 시설이나 낯선 사람들과 모여서 춤을 추는 클럽이나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공항 등이었다. 사람들은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위안하며 발전하는 존재였지만 현재는 많은 부분이 요원해졌다.
평소 타인과 교류를 즐기던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서로가 서로를 허용을 전제로 힘을 얻어 살아가고 있었다. 보건위생의 상승으로 환자 수는 줄었지만 응급실로 달려오는 우울한 사람들은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늘었다. 바야흐로 '언택트'와 '코로나 블루'의 시대다.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이후의 삶은 잘 가늠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한 시기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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