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눈앞의 일이 온 세상의 일이다

장백산-1 2020. 11. 25. 15:15

눈앞의 일이 온 세상의 일이다 - - 몽지&릴라

 
지혜의 눈, 법신, 광명이라는 방편의 말은 모두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이 세상 모든 것을 
보는 듯하여 지혜의 눈이라는 방편을 쓰고, '이것'이 세상 모든 형상으로 드러나기에 법신(진리의 몸
이라는 방편을 사용하고, '이것'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추는 듯하여 광명(빛)이라는 방편을 사용한다.

지혜의 눈, 진리의 몸(법신), 빛(광명)도 어디까지나 방편상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무언가를 비추는 
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라는 형태도 따로 없으며 빛도 아니다. '이것'은 어떤 것이 아니지만 
여기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그것이 되며 모든 것이 비친다. '이것'은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소한 것에서 아주 복잡하고 신기한 일까지 있는 그대로 '이것' 하나의 
일이다.

이것'은 특별하게 각고의 노력을 해서 얻는 게 아니다. 특별한 상태를 유지할 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일상생활 아주 사소한 일에서 평소에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한 일에서도 모두 '이것' 하나의 일을 벗어나 있지 않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특별한 행위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사소한 일에서 그 형태와 모양에 마음이 사로잡
히지만 않으면 바로 '이것'이 자각된다.

늘 겪는 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경험이 '이것'을 깨닫게 되는 문이다. 만약 일상의 일에서 그 모양과 
형태에 갇힌다면 '이것'은 단단하게 닫혀있는 문처럼 보이지만 그 모양과 형태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으면 '이것'은 완전하고 적나라하게 활짝 열려있다. 문이 있느냐 없느냐는 자기에게 달려있다. 문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분별심(分別心)으로 '이것'을 보려고 하면 영원히 볼 수 없다. 분별심 없는 눈
으로 보면 '이것'은 본래 이미 언전하고 적라하게 세상천지에 다 드러나 있다.

손가락을 세우거나 탁자를 치는 행동, 차를 마시고 하늘을 보는 일 등은 사소하고 사소한 일상이다. 
이런 일상 가운데 '이것', 도(道)는 털끝만큼도 부족함이 없다. 문득 '이것'을 깨달으면 사소한 일에서 
신비한 일, 나와 세계가 모두 '이것' 하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맛은 어디에서나 똑같다. 
물맛을 지금 여기서 내가 마시는 물에서 확인하면 세상의 모든 물맛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