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野望)과 열등감(劣等感)
나는 야망(野望)의 중심축(中心軸) 둘레를 돌아가는 삶의 수레바퀴를 ‘지옥(地獄)’이라고 말한다. 삶을 망치는 주범은 ‘야망(野望)’이라는 열병(熱病)이다. 인간이 시름시름 아파한 가장 심각한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질병 중에서 야망(野望)이라는 열병(熱病)보다 더 큰 질병은 없다. 야망의 바람에 흔들린 마음은 결코 평화, 고요, 지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평화, 고요, 지복은 자기 자신과 편해질 때 나오는 결과물이다. 자기 내면이 편안하지 않은 사람은 병에 걸린 사람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편안한 사람이 모든 면에서 정말로 건강한 사람이다.
한 젊은 여인이 내게게 물었다. “야망(野望)의 근원(根源)은 무엇입니까?”
내가 답했다. “궁핍에서 오는 열등감(劣等感), 즉 콤플렉스다.”
열등감 콤플렉스와 야망은 정반대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열등감 콤플렉스와 야망 그 둘이 정말로 서로 모순적인가? 그렇지 않다. 그 둘은 모순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 둘은 동일한 느낌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이다. 그래서 열등감 콤플렉스의 반대쪽에는 야망이 있다.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서 그 열등감은 곧 야망이 된다. 열등감이 완전히 변장한 것이 바로 야망이다. 그러나 가장 값비싼 옷을 입고난 후에도, 열등감은 없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열등감을 감출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계속해서 열등감을 보게 된다. 옷을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벌거벗은 모습이 아니겠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는 벌거벗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야망으로 얻은 성과들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황홀케 만든 사람들이 오히려 내적(內的)으로는 불안해하며 더 큰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더 큰 야망을 꿈꾸는 것이다. 그들의 내적인 열등감 콤플렉스는 성공을 통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성공은 그들에게 더 큰 성공을 위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런 식으로 그들이 해결책이 되어줄 거라고 여겼던 성공들은 새로운 문제들의 전조가 될 뿐이다. 그리고 삶의 문제들 중에 하나가 잘못된 방식으로 처리될 때 이런 일이 생겨난다.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스스로 더 큰 문제들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질병을 숨기는 것은 그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다. 질병은 오히려 더 많은 자양분을 얻는다. 골치 아픈 열등감 콤플렉스를 숨기려는 시도를 통해서 마음은 야망으로 채워지고 야망의 다른 쪽 얼굴인 열등감 콤플렉스를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야망을 품게 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쉽게 망각하게 된다. 그때 야망이 세속적인 것인지, 혹은 깨달음을 위한 것인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야망은 사람을 도취하게 만든다. 야망의 그런 도취성이 깊은 자기 망각을 불러온다.
사람이 야망의 도취성에 익숙해지거나 야망에 과도하게 도취되면, 그는 더 이상 쉽게 취하지 못하게 되고, 마음은 더욱 강력하고 더욱 새로운 마취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야망은 점점 더 커져가게 될 것이다. 끝이 없을 것이다. 처음은 있지만 끝은 없는 것이다.
- 오쇼의 <초월의 등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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