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라는 겨울의 길
어디쯤 왔을까 길을 가던 발걸음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 모르듯 앞으로
걸어갈 길도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삶을 사랑했을까, 지금도 삶을 사랑하고 있을까.
어느 모임 자리에서 번듯하게 내세울 명함 하나 없는 노년이 되었다.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던 그리움의 순간들, 매달리고 십고 놓고싶지 않았던 욕망의 시간도
노년이라는 겨울의 문턱에 서서 뒤돌아보니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추억들이다.
이제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걱정하지 말자. 아쉬움도 미련도, 즐거움도 쾌락도,
추억과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그래도 노년이라는 겨울을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있으니 오늘이 있으니 내일도 그렇게 믿고 가자.
어디쯤 왔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도대체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노년의 길.
오늘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어제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처럼, 내일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오늘의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처럼, 그냥 지나가다
세월이 무심코 나를 내 고향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마음을 살필 겨를도 없이 무심히 살다보면 꼭 노년이라는 겨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는 노년의 시간은 얼마만큼이나 길게 갈 것인가.
겨울을 느낄 때쯤 봄은 다시 올 거고, 사랑을 알 때쯤 사랑은 식어 가고, 부모의 은혜를
알 때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고 자식 곁을 떠나가고, 건강의 중요성을 알 때쯤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무엇이 나인 줄 알 때쯤 나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가야만 한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도, 화살같이 빠르게 흐르는 세월도,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데, 세상 모든 것들이 너무 번개같이 빠르게 변하며 흘러가고, 항상 무엇인가를
보내고 또 얻어야 하는가. 무상(無常) 속에 걸어온 인생길 뒤돌아 보니 역시 무상(無常)의 길이고
무아(無我)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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