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계(存在界)의 의미
존재의 차원에는 언어(言語)가 없다. 언어에 의존하면 존재와 교류할 수 없다. 존재는 신비하다. 존재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다. 존재에 대해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시도하면 존재에서 빗나간다. 존재계(存在界)에서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존재계(存在界)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생각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존재계(存在界)는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이 시(詩)에 가깝다. 존재계(存在界)는 하나의 암시(暗示)다. 존재계(存在界)는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여주기는 하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보라, 느껴라, 만져보아라! 그러면 존재계(存在界)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존재계(存在界)를 생각하지 말라.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그대는 존재계(存在界) 빗나간다. 이때 그대는 개인적(個人的)인 세계에 갇히게 된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생각의 세계는 개인적인 세계다. 이때 그대는 개별적인 자기 안에 갇혀버린다. 그 안에 밀봉된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생각이 없을 때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개별적인 자기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생각이 없을 때 그대는 활짝 열린다. 이 세상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수용적인 상태가 된다. 이때 존재계(存在界)는 그대를 통해 흐르고, 그대는 존재계(存在界) 안으로 흘러든다.
아주 박식한 비평가인 어떤 사람이 피카소를 방문했다. 그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피카소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들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를 들어, 앞에 있는 그림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피카소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그 비평기에게 말했다. “창밖을 내다보시오. 저기에 있는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소? 노래하는 새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소? 떠오르는 태양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소? 그것들은 모두 아무 의미도 없이 존재하고 있소. 그렇다면 내 그림도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할 수 있지 않겠소?”
왜 그림의 의미를 묻는가? 그 비평가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는 생각을 하기를 원한다. 언어적으로 그림을 규정(規定)하고 싶어한다. 그 비평가는 영적인 교섭(communion)이 아니라 언어적인 소통(communication)을 원한다. 그러나 존재계(存在界)가 의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존재계(存在界)는 모든 영광을 간직한 채 그냥 거기에 있다. 존재계(存在界)는 의미심장하지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존재계(存在界)의 의미는 실존적(實存的)이다. 그러니 그냥 보라, 느껴라, 관찰하라. 그냥 존재계(存在界) 안으로 들어가라. 존재계(存在界)가 그대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고 존재계(存在界)에 아무것도 묻지 말라. 존재계(存在界)에 무엇을 묻는 즉시 그대는 대학(university)으로 가는 것이지 우주(universe)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주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존재계(存在界)에 아무것도 묻지 말라. 존재계(存在界)에는 말하고 대답할 자가 없다. 그대 존재의 질(質)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대는 우주와 연결될 수 있다.
-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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