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냥 사는 거지 뭐...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뭐...   - -  법상스님

그냥 그냥 사는 거지요. 사는데 아무런 이유나 조건도 붙지 않고
억지스럽게 억지로 살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그냥 살려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냥 그렇게 말입니다.
산은 늘 그대로 지금 그 자리에 있건만 아무런 불평이나 분별도 하지 않고
물은 늘 주위 환경에 내맡겨서 흐르지만 아무런 시비를 하지 않습니다.

작고 얕은 시냇물은 흐르다가 크고 깊은 강으로 또 바다로 합류합니다.
물은 그렇게 인연따라 흘러가다가 따가운 햇살의 연을 만나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그러다가 인연따라 빗방울로 혹은 우박이며 눈으로 내립니다.

물은 언제부터 그랬냐 할 것도 없고, 왜 그러느냐 할 것도 없고, 어느 모습을 딱히 고집하여
그 모습으로만 있지도 않고, 구름으로만 있지도 않고 빗방울이 되건 우박이 되건 눈송이가 되건 
탓하는 법이 없습니다.

두 갈래 길이 앞에 나타나도 어느 길로 갈까 분별하지 않고 턱 맡기고 턱 놓고 가며,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기더라도 마땅히 그 모든 그릇의 모든 모양과 하나가 되어 줍니 다.
지난 일에 얽매임도 없으며, 미래의 일을 계획 할 일도 없지만
지난 삶이 평온하고 앞으로의 삶도 내맡기고 자유로이 삽니다.

진흙을 만나 흙탕물이 되어도 괴로워하지 않고, 사람 몸 만나 피가 되고 땀이 된다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될까, 무엇이 될까, 어디로 갈까, 왜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분별하지 않아도 잘 살아 갑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고, 저렇게 살아도 괜찮고, 무엇이 되어도 괜찮고,
어디로 가도 괜찮은 참 허허로운 녀석이 물입니다.

물처럼 그렇게 그냥 그냥 사는 거지 다른 뭐가 있습니까. 모든 것을 순리에 내맡기고 살아가는 겁니다.
모든 것을 놓음 없이 놓고 살아가는 겁니다. 함이 없이 무엇이든 다 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 사람들의 삶도 물의 삶의 여정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같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렇기에 애써 놓으려고 방하착, 방하착 하지 않아도 이미 다 놓고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크게 보았을 때 사람들의 삶은 놓고 가는 삶입니다. 다만 사사로이 잡고 있는 것들이 워낙 많다보니
온갖 선악, 시비, 분별, 행과 불행을 제 스스로 만들어그렇게 만든 틀 속에 빠지니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온갖 선악, 시비, 분별, 행과 불행, 그것 또한 사람들에게 문제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지
본래의 자리, 근본성품, 마음자리에서 보면 그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크게 놓고 가는 모습일 뿐입니다.

생과 사가 없는 자리에서는 생과 사의 겉모습만을 보고 생과 사에 괴로워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
마치 극장이나 영화관의 관객들이 연극이나 영화속 주인공이 죽더라도 잠시는 눈물이 나지만
한생각 돌이켜 영화나 연극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보면 그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연극 속의 주인공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스스로 이 죽음은  연극임을, 현실의 실상이 연극처럼 
거짓된 환영(幻影)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괴로움에 빠져 허덕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생과 사를 포함한 인생의 모든 것 자체가 실체가 아닌 연극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니고 즐거움도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연극은 어디까지나 주인공과 온갖 등장인물을 가진 엄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엄연한 그 현실 속에 괴로움의 모습, 즐거움의 모습들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그러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전체의 입장이 되어, 마음자리의 입장이 되어 인생을 가만히 관해 본다면,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똑 이런 모습, 괴로움의 모습, 즐거움의 모습들이 번갈아 등장하는 그대로입니다.

주인공이 괴로움을 연기하지만 괴로움에 빠지지 않듯, 답답함에 빠져있지만 답답함을 잡지 않고 놓고 있듯,
그렇게 사람들의 삶도 참나의 입장, 전체의 입장, 마음자리의 입장에서는 놔버리고 가는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생각 돌이켜 굳게 믿고 나면 이미 놓고 자유롭게 가고 있는 것이 됩니다.
'놓는다'는 한 생각 돌이킨 그 자리가 바로 본래자리, 마음자리, 참나의 자리, 전체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허허로운 이 세상 아웅다웅 하며 복잡하게 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그냥 사는 겁니다.
이미 놓고 가고 있으니 놓는다는 말도 필요없이 그저 턱 믿고 턱 맡기고 가면 그만입니다.
놓고 가는 그 큰 마음자리의 흐름에 일체를 내던지고 나면 그냥 그냥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잠시 마음 속에서 괴롭다, 아프다, 우울하다, 질투난다 하고는 있지만 그냥 그게 다입니다.
그러고는 없는 겁니다. 그렇게 잠시 그런 마음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그냥 없는 겁니다.

10년 전 배고팠던 일이 지금까지 배가 고픈 일로 남아 있지 않듯, 10년 전 있었던 일들을 지금 낱낱이 
다 기억하여 남기고 있지 않듯, 그렇게 그렇게 놓고 가고 있는 겁니다.

잠시 어리석어 잡고 있었던 것 또한 업식으로 남는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인연따라 흘러 나오면
인연따라 튀어나오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그만인 겁니다. 그렇듯 잠시 잡았다 놓는 것을 어찌 
잡음이라 하겠습니까. 생각의 차이일 뿐입니다. 잡는다고 하면 잡는 것이 되고 괴로운 것이 되겠지만
놓는다고 하면 그것 또한 놓고 가는 것입니다

수행자라는 자기확신만 있으면 됩니다. 수행자는 늘 넉넉합니다. 지음 없이 짓고 받음 없이 받고 사니 말입니다.
이미 다 놓고 사는 것을 굳게 믿고 가시길 바랍니다. 이미 다 놓았는데 더 이상 다시 무엇이 붙을 게 있겠습니까.
생과 사도 다 놓았는데 살아가며 느끼는 괴로움 즐거움이 다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그냥 물 흐르듯 허허로이 살아가는 수행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