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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푸는 방식

장백산-1 2022. 7. 4. 17:36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푸는 방식


조용한 도량에 고요히 앉아 두 눈을 통해 초록 숲을 바라보고, 귀를 통해 풀벌레 소리를 듣고,
코를 통해 숲의 향에 취하고, 몸을 통해 바람이 부는 소식을 감지한다. 그러면 마음도 저절로 휴식을 한다.


욕심 내려놓고 모든 일을 내면에 맡기면 삶에서 일어나는 몬든 문제들의 답이 내 안에 있다.

마음을 간절하게 먹으면 그렇게 간절하게 일으키는 마음은 현실로 발현된다. 어떤 것이 필요할 때, 그것에 대한 욕심이 없고 다만 간절한 마음을 먹는다면 때때로 그 간절한 마음은 필요에 따라 현실로 응해 주곤 한다. 깊은 내면에서 청정한 마음이 일어날 때, 내 마음과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이 함께 마음을 일으키고 더불어 내 밖의 모든 존재며 생명들이 법신으로써 서로 통하여 필요한 그것을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청정(淸淨)’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청정은 욕심이 없어야 하고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며, 또한 그 일으킨 마음에 대한 바람과 집착까지도 다 놓아버리고 한생각 일으킬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불사를 할 때도 욕심으로 너무 과하게 하다보면 되려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고, 다만 ‘필요’에 의한 불사를 집착 없이 부처님께 맡기고 하면 어느샌가 인연따라 필요한 것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일에 대한 욕심을 놓아버리고 인연따라 턱 맡겨 놓고 시작하면 되어야 할 일은 법계에서 일이 성사 되도록 이끌어 준다.

 

삶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의문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풀 수 있다. 이를테면 의문 나는 것들을 마음 속에서 간절히 알고자 하면 이 법계 어디에선가 그 답을 알려주곤 한다. 어느날 이름모를 야생화를 보았을 때 그 궁금한 마음을 화두 던지듯 내 안에 턱 던져 놓으면 얼마 안 있어 문득 책이나 신문에서 본다거나, 혹은 그 꽃을 아는 분께서 알려 주신다거나, 때때로는 문득 열어 재낀 책 속에서 알게 된다거나 그렇게 자연스레 그 답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불교를 공부할 때도 그렇다. 의문이 드는 것이 있을 때 내 안에 그 의문을 턱 던져 놓으면 내 안에서 경계를 마주하면서 문득 '아 그렇구나' 하고 알아지기도 하고, 때때로 어떤 선지식 인연을 만나 답을 듣기도 하며, 문득 손에 잡은 책 속에서 그 답을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의문을 푸는 방법은 내 안에 턱 맡겨 놓고 그 안에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방법이다.

 

농사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농사에 대해 아직도 많이 서툴지만 그래도 이만큼 텃밭이라도 가꾸게 된 것도 다 이 공부를 통해서 얻은 소득이다. 처음 농사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마침 그 시기에 농사짓는 신도님께서 새벽예불을 나오게 되셨고, 약초며 나물에 대해 궁금할 때 새로 옮긴 도량에서 그 방면의 전문가이신 신도님을 만나기도 했다. 늘 그런 방식으로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곤 한다.

 

그렇다고 이 말을 마음 내면 법계가 다 알아서 해 준다고 고정 짓고 들으면 안 된다. 무조건 마음 내면 원하는 그 마음이 다 이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되도 되는 거고 안 되도 되는 것일 수 있어야 참말로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삶의 모든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내 안에서 항상 진리의 답이 물음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삶의 문제의 해답은 항상 내 안에 있고, 그것을 푸는 방법 또한 늘 내 안에 있다. 안으로 맡겨 놓으면 나와야 할 것이 나온다. 그것이 정답인가 오답인가를 분별하지 말고 나오는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수행자가 삶의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법보신문/2005-05-18/804호>,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