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진실하게 맺는 법
관계를 진실하게 맺으려면 우선 과거(過去)를 완전히 놓아버려야 한다. 과거(過去)가 개입 안되면 시비 분별도 사라진다.
삶이란 관계의 연속이다. 관계의 끊임없는 연장이 삶이다. 우리들의 삶에서 진실한 관계는 과연 얼마나 될까?. 과연 참된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한가. 진실한 ‘관계’란 ‘나(아상)’이 끼어들지 않는 관계이며, 과거가 끼어들지 않는 관계이고, 따라서 사사건건 시비 뷴별 비교 판단 해석을 일삼는 실체가 없는 허망한 생각이나 관념이 개입되지 않은 관계이다.
사람들이 맺는 관계는 철저히 이해타산(利害打算)으로 계산되어 있다. 이해타산으로 계산되어 있는 관계는 언제나 ‘나(아상)’이라는 이기(利己)가 내제되어 있다. 관계를 맺을 때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가’를 먼저 따지곤 한다. 만약 ‘나’라는 아상 없이 상대와 관계를 맺게 된다면 우리는 평등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 하는 등의 그 어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도 없이 오직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평등한 순수한 관계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나라는 울타리가 걷어졌을 때 나와 상대라는 분별 차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진실되게 상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완전히 과거를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개입시킨다는 것은 이미 상대에 대한 그 어떤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관념과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에게 다가선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나와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을 지금에 다시 만나게 되면 우리 안에는 곧장 과거가 개입됨으로써 그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또 나에게 잘 해 준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좋은 느낌과 기억을 전제해 두고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관계의 경우 모두 근원적이지 못하다. 과거(過去)는 이미 지나갔다. 과거의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엔 과거와 전혀 새로운 ‘지금 이 순간의 그대’만이 있을 뿐이다. 과거의 잣대, 기억, 생각, 판단 등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그런 판단은 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놓치는 일이다. 그런 판단은 전혀 상대의 진실에 다가서지 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과거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게 될 때, 또한 ‘나’라는 이기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게 될 때, 우리들은 상대에 대해 그 어떤 관념도 편견도 생각도 분별도 차별도 갖지 않게 될 수 있다. 그 어떤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도 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렇듯 참된 관계로써 상대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 속에서의 관(觀)수행이며, 관계 속에서의 명상(冥想)이다. 그렇게 진실한 관계로써 상대를 바라보았을 때 나와 상대는 둘로 나뉘지 않는다. 이것이 불이(不二)라는 가르침이다. 그 상대가 바로 나 자신이 된다. ‘나’라는 울타리가 걷어지고, ‘과거’라는 얽매임의 틀에서 호젓하게 빠져나와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채 나와 상대라는 분별을 넘어섰기 때문에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참된 관계는 ‘나(아상)’라는, 또 ‘과거’라는 것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관계다. ‘나’와 ‘과거’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시비나 분별, 생각이나 비교 판단 해석도 완전히 멈춰버린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보라. 나는 과연 관계를 맺을 때, 얼마만큼 ‘나’라는 이기 아상을 버리고 다가서는가. 얼마만큼 ‘과거’의 잣대를 버린 채 ‘지금 이 순간’으로써 상대를 만나고 있는가. 얼마만큼 텅 빈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살펴보라.
<법보신문/2005-08-03/814호>,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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