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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장백산-1 2022. 8. 3. 14:21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해서 보는 것을 중생의 어리석은 놀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무엇을 경험을 할 때, 그냥 그저 그렇게 일어나는 경험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면, 바로 그것이 지혜이자 깨달음이다. 지혜나 깨달음이란 이처럼 단순하고, 깨달음이라는 어떤 실체적인 상태 같은 것이 아니다. 어제 보았던 것과 비교해서 보지 않기 때문에, 지금 본 것에 대해 그저 지금 이 순간으로 생경하게, 분별없이 그저 볼 뿐이다.

 

어떤 사람을 볼 때, 어제 또는 먼 과거에 만났던 그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만난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그 사람을 실체화시켜서, 그 사람이라는 특정한 존재가 어제부터 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실체로 계속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일 뿐, 착각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무상(無常)으로 보는 안목이 아니고 무아(無我)로 보는 안목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라는 실체가 외부에 경계로서 딱 정해져 있어서, 어제 또는 먼 과거부터 오늘까지 항상했던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서 그 어딴 사람이 항상한다고 착각하고, 실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이 상태가 무상과 무아를 모르는 상태 삼법인에 무지한 것이다.

 

지혜는 단순하다. 그저 그냥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의 진실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어제 보았던 사람이라는 허망한 기억 속의 생각으로 오늘 만나는 이 사람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을 하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이 지혜이고 깨달음이다.

 

그렇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곧 무상을 자각하는 것이다. 항상한다고 여기면, 어제의 그 사람이 지금의 이 사람으로 항상하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않은가? 어제의 기억은 허상이니 신경쓸 필요가 없다.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 사람을 지금 여기로써, 무분별로써, 그저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삼법인의 지혜이며,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보는 정견이고, 깨달음이다. 

2019.07.18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