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일 뿐입니다.
나를 세상에 과도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은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연 따라 그저 주어진 삶의 흐름을 타고 삶의 흐름에 내맡길 뿐입니다.
삶은 언제나 있어야 할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모두를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그저 활짝 열린 호기심으로 매 순간 배우는 아직은 부족한 공부인일 뿐입니다. 다만 주어진 인연 따라 행할 뿐, 무엇을 해야만 한다거나, 무엇이 되야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연이 가져다 주는 이대로의 삶 위에서 그저 역할놀이를 할 뿐입니다.
저를 스승으로 삼지 마십시오.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지어 말하지 마십시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툴지만 함께 공부해 나가는 도반이고 길벗입니다.
물론 사바세계라는 이 세상에서의 각자 맡은 역할은 다르고 그 역할을 인정은 하겠지만, 내면에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는 상에 가두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서 드러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인연 따라 말을 하고, 침묵도 하고, 이 대지 위를 걷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스님도 아니고, 수행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특정한 삶의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갈 뿐입니다.
주어진 역할을 때에 따라 하겠지만, 그것이 나를 가둘 수는 없습니다. 행위는 있으되, 행위하는 자는 없다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사실 그런 역할놀이를 하며 나그네로 왔다가 나그네로 떠나가는 '나'는 없습니다. '나'인 것처럼 '너'인 것처럼 연극을 하고 있을 뿐,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진실이 임시로 드러난 그림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세상 이 모든 것들이 오직 하나의 꿈에 불과할 뿐입니다. 당신의 꿈이며, 나의 꿈이고, 하나의 꿈일 뿐입니다. 지구라는 이 아름다운 행성 위, 불가사의한 꿈 속에서 매 순간 그저 주어진 꿈과 어울려 놀 뿐인 것입니다. 이 꿈 위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거나, '저렇게'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정해진 법칙은 없습니다.
어떤 삶은 고귀하고 어떤 삶은 미천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존재도, 그 어떤 삶도,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 사람도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인연따라 사라져갈 뿐, 그것들에는 그 어떤 의미는 없습니다.
좋게 표현해 본다면, 삶은 놀라운 아름다움이며, 이대로 완전한 실상입니다. 평범하게 표현해 본다면, 모든 것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나'도 없고, '당신'도 없으며, '세계'도 없습니다. 그저 이러한 꿈 속의 여행을 천진한 눈으로 볼 뿐!
2020.05.08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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